[기자의눈]이명재/헛말에 그친 ‘여성우대’

  • 입력 2002년 1월 3일 19시 16분


중국 경제의 급성장을 이끌고 있는 주요 동력 가운데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있다면 바로 여성의 역할이다.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은 여성을 가리켜 ‘이 세상의 절반’이라고 부르며 산업 인력으로 적극 동원했다. 많은 여성들이 전족의 굴레에서 벗어나 산업 현장에 뛰어들었다. 마오쩌둥이 뿌린 씨앗은 이제 개혁개방 과정에서 열매를 맺고 있다.

눈을 안으로 돌려 우리의 ‘절반’은 어떤지 보자. 외견상으론 ‘여성시대 개막’이라는 축포가 터지고 있다. 하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냉정한 현실이 나타난다.

여성인력 활용 시리즈 취재 중 만난 한 40대 여성의 얘기가 그 현주소를 전해준다.

“한 대기업에 경력사원으로 입사해 15년 간 다녔죠. 정상적인 승진 코스였다면 부장까지 하고 임원을 바라볼 수도 있었죠. 하지만 끝내 과장으로 그만둬야 했어요. 승진 0순위로 3, 4년을 기다리는 동안 나이 어린 후배 남자사원들이 줄줄이 올라가는 걸 보고 있자니 스스로가 얼마나 한심해 보이던지….”

이 여성이 다닌 회사는 국내 굴지의, 게다가 “여성인력을 특히 우대한다”고 회장이 곧잘 얘기하곤 하던 기업이다.

아직도 많은 기업들이 이렇게 말한다. “여성은 시킬 수 있는 일이 제한돼서…” “관리하는 데 비용이 많이 든다”고.

상당 부분 일리 있는 변명이라 기업들에만 책임을 물을 순 없다. 하지만 어찌됐든 이젠 이런 논리로 비켜갈 수 없게 됐다. 많은 전문가들은 우리 경제가 ‘성장의 한계’를 돌파할 열쇠의 하나를 여성인력 활용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70년대 이후 여성인력 풀 가동으로 인력 문제를 해결한 선진국들의 예가 이를 보여준다.

최근 열린 여성인력개발원의 토론회에서 내린 결론도 ‘이제 여성인력 활용은 상징이 아닌 강대국 진입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것이었다.

‘세상의 절반’을 묶고 있는, 눈에 보이지 않는 전족을 풀어야 한국도 도약할 수 있을 것이다.

이명재 경제부 mj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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