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정문건/상반기 경기회복 “글쎄요”

  • 입력 2002년 1월 2일 18시 18분


지난해는 어려운 한 해였다. 전 세계 경제가 정보기술(IT) 버블 붕괴로 인해 동반 침체한 가운데 테러와의 전쟁으로 유가는 급등락했다.

그리고 국제금융시장도 연말경 아르헨티나의 모라토리엄 선언과 일본 정부의 의도적인 엔저 유도로 다시 불안해졌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도 수출 부진과 금융 경색 현상의 재발로 급격히 냉각되었다.

그러나 아이러니컬하게도 테러사태 이후 국제 금융가는 오히려 한국 경제에 대한 평가를 긍정적으로 재고했다. 그들은 사회 전반에 걸친 구조조정이 미흡하다고 일방적으로 한국을 평가절하(Korea Discount)했던 그동안의 자세를 버리고 우리 경제와 기업들의 가치를 재평가(Korea Revaluation)했던 것이다.

돌이켜 보면 지난해 우리 경제는 1997년 외환위기를 당했을 때보다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가격이 IT산업의 과잉 설비로 통상적인 반도체 사이클을 벗어나 원가 이하로 폭락함에 따라 우리의 교역 조건은 지난 2년 동안 두 자릿수의 하락폭을 기록했다. 또한 테러사태로 인한 소비심리의 급랭으로 세계 경제성장률이 평균성장률에서 크게 떨어짐에 따라 우리 수출은 마이너스 성장세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런데도 지난해 하반기 이후 외국인들은 공격적으로 한국 주식을 매입했다. 그들은 우리 경제가 97년에 비해 더 큰 충격을 외부로부터 받았으나 대부분의 제조 상장기업들이 흑자 결산을 했고 경제성장률은 지역 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경쟁 상대국에 비해 3% 안팎의 성장세를 유지한 것을 높이 평가한 것 같다.

금년 중 우리 경제를 둘러싼 대내외 환경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현재 세계 경제의 본격적인 회복은 미국의 제조업 가동률이 75% 이상 수준으로 상승하지 못하고서는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국제 유가도 미국의 대 테러전 확전 여부가 불확실해 향후 추세를 일방적으로 예측하기도 쉽지 않다. 그리고 국내 사정도 지방선거와 대선 등 연이은 선거로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다.

하지만 올해도 우리 경제의 향방은 교역조건과 주가의 흐름에 의해 결정될 것이다. 교역조건의 향방은 우리 IT산업의 주력 수출품인 반도체 가격과 주종 수입품목인 원유가격 변동에 달려 있다.

그리고 주가는 금융면에서 그동안 경색되었던 자본시장의 중개기능이 회복될 수 있을지를 가늠하는 주요 지표다.

이들의 최근 움직임을 볼 때 금년 상반기 중 우리 경제가 조기에 회복될 수는 없을 것 같다.

올해 초 배럴당 20달러 이하의 유가를 끌어올리기 위한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의 석유 감산이 본격화될 것으로 보이는 데다 대 테러전의 확산도 우려된다.

아직도 대내외적으로 우리 경제에 충격을 줄 예측 못할 복병들은 산재해 있다. 새해 연이은 선거에도 흔들림없이 우리 경제 시스템의 안정을 위한 구조조정 노력을 지속하고 대외 환경의 변화에도 유연하게 대처해야만 금년 중 우리 경제는 본격적인 경기 회복 국면에 재 진입할 수 있을 것이다.

정문건(삼성경제연구소 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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