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손호철/국민이 낡은 정치 마침표를

  • 입력 2001년 12월 31일 17시 05분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새로운 각오와 희망에 가슴이 부풀기보다는 긴 한해를 어떻게 보낼 것인가 하는 걱정에 새해 아침 눈을 뜨기가 싫기만 하다. 그 이유는 올해가 정치의 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방선거와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정치권이 얼마나 더러운 이전투구와 이합집산으로 국민을 또 한차례 절망의 구덩이로 몰아넣을지, 증오의 정치가 얼마나 심화될 것인지 걱정되기 때문이다.

정치는 그동안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데 실패해 왔다. 어두웠던 군사독재시절은 군사독재라서 그랬다고 치더라도 김영삼 정권과 김대중 정권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3김 정치라고 불리는 전근대적인 사당정치와 지역주의, 그리고 한보사태와 최근의 게이트 사건들이 보여주고 있는 총체적 부패 등은 그나마 민주화운동이 가지고 있었던 도덕적 권위마저도 실추시켜 버렸다. 특히 김대중 정부의 인사정책의 실패는 소외지역의 집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지역주의를 심화시켰고 여야간, 그리고 그 지지세력과 지지지역간의 증오의 정치는 그 어느 때보다도 기승을 부리고 있다.

▼새해엔 페어플레이를▼

그러나 위기가 기회이듯이 절망은 희망의 전주곡일 수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재·보궐선거 참패에 따른 김대중 대통령의 민주당 총재직 사임은 그동안 지체되어온 낡은 3김 정치의 청산 기회를 우리에게 제공해 주고 있다.

문제는 3김 정치의 극복이란 단순히 3김의 물리적인 퇴장이 아니라 3김적 정치행태의 발본적인 척결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그동안 차세대, 그리고 신세대 정치인들에게서 낡은 3김 정치적 행태, 3김 이상의 낡은 정치행태를 심심치 않게 목도해 왔다.

중요한 것은 오는 선거에서 누가 승리하느냐가 아니라 그 경쟁과정, 특히 그 과정의 민주화다. 구체적으로, 사당정치를 민주화해 정당을 당원과 국민에게 돌려주고 지역주의 극복의 실마리를 마련하는 한편 상호비방과 정쟁으로 지새는 대립의 정치, 원칙이야 어찌되었던 세를 불려 이기고 보자는 이합집산의 정치, 이 같은 세불리기 정치를 이용한 낡은 군사독재세력과 철새 정치인의 줄타기 정치를 넘어서 건설적인 정책과 비전 경쟁의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이와 관련해 반드시 지적하고 싶은 것은 세 가지다. 우선 지더라도 경쟁의 원칙을 지키는 페어플레이의 정신이다. 97년 대선과정에서 있었던 경선결과 불복종이 정권교체와 소외지역의 집권에 도움을 주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는 민국당의 참패가 보여주듯이 영남의 지역주의를 단순한 감정적 지역주의에서 고차원적인 전략적 지역주의로 악화시키는 등 지역주의를 심화시키는 결과를 가져다줬다. 따라서 경선 불복종과 같은 사태는 반드시 막아야 한다.

또 이번 대선을 통해 김대중 정부가 국제통화기금(IMF)의 요구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해 추구해온 시장만능의 신자유주의가 과연 세계화의 거센 물결이 몰려오고 있는 격변의 시대에 우리가 지향해 가야 할 21세기 한국사회의 모델인가, 그것이 아니라면 민주적이면서도 효율적인 한국적 모델은 무엇인가에 대한 진지한 논쟁을 만들어내고 이를 통해 국민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

현재 우리는 19세기 말과 비슷한 세계사적 격변기에 처해 있지만 이에 대한 논의는 정치권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정치권이 그동안 말로는 정책경쟁으로 나아가겠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러지 못했던 것은 정당간에 정책적 차별성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새로운 정치세력이 성장할 수 있는 실마리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지역주의등 떨쳐내야▼

이번만은, 정말 이번만은 정치가 국민에게 희망과 신바람을 가져다주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아니, 최소한 과거처럼 절망과 냉소, 그리고 증오를 가져다주지는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물론 이에 대한 1차적인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 그러나 국민이 지역주의와 같은 낡은 정치의 포로로 남아있다면 정치권의 변화는 요원해진다. 이 점에서 올해가 어떠한 해가 될 것인가는 궁극적으로는 국민에게 달려 있다. 이제 단순한 기원을 넘어서 우리 모두가 적극적으로 나서 희망의 한 해를 만들어 가자.

손호철(서강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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