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관점에서 부임한 지 2년이 채 안 된 최상룡(崔相龍) 주일 대사의 후임으로 조세형(趙世衡) 민주당 상임고문을 내정한 정부의 결정은 납득하기가 어렵다. 정부는 최 대사가 부임 이후 일본의 역사 왜곡, 재일동포 참정권 확대, 재일동포 통합은행 설립 등 주요 현안을 제대로 풀지 못한 것을 조기 교체의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모양이다. 그러나 거물 정치인이기는 하지만 외교전문가라고는 할 수 없는 조 상임고문이 학계의 대표적인 일본통인 최대사보다 일을 더 잘 하리라고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집권 여당의 요직을 거친 조 상임고문이 그동안 월드컵조직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서 여러 자리를 맡을 것이라는 설은 꾸준히 있어 왔다. 따라서 이번 그의 주일 대사 내정은 ‘자리 만들어주기’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 아닌가 하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지 않을 수 없다.
주러 대사의 조기 교체도 한나라당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한심한 ‘보복 인사’가 아닐 수 없다. 한나라당은 이재춘(李在春) 대사가 지난달 러시아를 방문한 이회창(李會昌) 한나라당 총재에게 베푼 과도한 호의 때문에 보복 인사를 당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고 있다며 정상적인 인사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대통령은 공관장이 잘못을 하거나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임기에 관계없이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다른 공관장 인사에 슬그머니 얹어 일본이나 러시아처럼 중요한 국가에 주재하는 대사에 대해 자리 만들기 또는 보복성 인사를 한다면 국민은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마침 지연 학연 등 친소 관계와 청탁을 배제하고 능력 개혁성 청렴도를 기준 삼아 공정 인사를 하라고 지시했다. 주일 주러 대사의 교체는 그러한 대통령의 공정인사기준에도 맞지 않는다. 그러니 대통령의 ‘공정인사’ 지시를 누가 믿겠는가. 말은 하면서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신뢰는 사라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