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승련/매관매직

  • 입력 2001년 12월 30일 17시 44분


지난해 7월 말 신광옥(辛光玉·전 법무부차관)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은 자택에서 민주당 당료인 정치브로커 최택곤(崔澤坤)씨와 사업가 구모씨의 방문을 받았다.

최씨는 친척뻘인 예금보험공사 부장 한 명을 이사로 승진시켜 달라고 말문을 뗐다. 구씨는 해양수산부 국장 한 명을 희망하는 다른 보직으로 보내달라고 청탁했다. 두 사람은 집을 나설 때쯤 미리 준비했던 현금 300만원과 500만원을 각각 꺼내 놓았다. 이후 최씨의 친척은 이사로 승진했고 구씨와 잘 안다는 해양수산부 국장은 8월 인사 때 원하던 보직으로 옮겨갔다.

이상은 검찰이 29일 진승현(陳承鉉) 게이트와 관련해 밝힌 신 전 차관에 대한 조사 결과다.

검찰은 신 전 차관이 “(돈을 받았다고) 시인하지는 않지만 적극 부인하지도 않고 있다”고 전했다. 검찰은 “신 전 차관이 해양수산부 장관이나 예금보험공사 사장에게 전화라도 걸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반세기 만의 여야간 정권 교체라는 의미를 안고 출범한 ‘국민의 정부’가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크게 잃은 주요인의 하나로 거듭된 인사파행이 꼽힌다.

그러나 정부 부처 국장이나 산하 단체 임원 인사와 관련해 민정수석비서관에게 돈이 건네졌으리라고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민정수석비서관이라는 자리는 주요 인물들의 이른바 ‘존안자료’를 관리하고 개각 등 각종 인사 때마다 대통령에게 후보를 추천하는, 인사를 총괄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만약 이런 민정수석비서관이 전화를 걸어 “선처를 바란다”고 했다면 어느 장관이 쉽게 거절할 수 있었을까.

때마침 이한동(李漢東) 국무총리는 29일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대신해 ‘능력 개혁성 청렴도를 중시하고 지연 학연 청탁을 배제한다’는 정부의 인사정책 방향을 발표했다.

너무나 당연한 인사원칙이 새삼스럽게 뉴스가 되는 현실이 안타깝다.

김승련<사회1부>sr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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