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국가폭력의 아픔 함께 나누자

  • 입력 2001년 12월 19일 18시 08분


‘수지 김’ 살인사건이 파묻힌 지 14년이 지나서야 진상이 드러났다. 검찰이 마침내 87년 당시 국가안전기획부에서 살인사건인 것을 알고도 대공(對共)사건으로 은폐 조작한 사실을 밝혀냈다. 세월이 흐르는 사이 그녀의 어머니는 간첩 가족이라는 멍에를 쓴 채 죽고, 언니와 오빠도 불쌍하게 죽은 동생의 신원(伸寃)을 호소하다 모두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검찰이 살인용의자로 동거남자였던 윤태식씨를 구속 수감한 지금도 ‘북한공작원 수지 김’ 누명은 공식적으로 벗겨지지 않은 상태다.

국가와 법, 그리고 도덕과 인권이 무엇인지를 되묻게 하는 사건이다. 수사 결론대로라면 이는 국가안보라는 미명 아래,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저질러진 ‘국가 폭력’이었다. 살벌한 권위주의 정권 시대, 권력집단의 농단에 의해 처참하게 무너진 개인의 인권과 한 가족의 불행을 무엇으로 보상할 수 있을 것인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은폐의 주역인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은 기소조차 하지 못했다. 범인 도피 등 혐의에 대해 공소시효가 지났기 때문이다.

안기부는 87년 당시 윤씨의 자진 월북 시도를 알아챘다. 그러면서도 북한대사관에서 퇴짜맞은 그가 ‘납북을 피해 도망쳤다’고 횡설수설하는 것을 공식화하고 기자회견까지 시켰다. 윤씨가 살해한 수지 김은 여간첩으로 몰았다. 보름쯤 지나 수지 김의 시체가 나타난 시점에라도 전모를 밝히고 윤씨를 처벌했어야 옳았다. 그러나 5공 말기 야당의 개헌 공세에 밀리고 박종철군 고문치사사건으로 궁지에 몰린 상황에서 안기부는 기가 막히게도 은폐 조작의 길을 밟았다. 외무부에 압력을 넣어 은폐 ‘공범’으로 만든 것도 안기부였다.

87년의 그 잘못 꿰어진 첫 단추로 인해 지난해 경찰의 내사 중단을 주도한 김승일 전 국가정보원 대공수사국장과 이무영 전 경찰청장이 구속되었다. 수지 김의 원혼이 흐느끼는 동안 윤씨는 사기죄로 복역도 하고, 벤처기업가로도 활개치고 다녔다. 이 희대의 국가 폭력 사건을 초기부터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언론으로서도 책임을 통감한다. 다시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는 계기로 삼고자 한다.

사회의 원칙과 상식을 지켜주는 것이 도덕이고, 법이 바로 최소한의 도덕이라고 말해진다. 법치국가의 근본을 생각하게 하는 이번 사건을 통해 국가 폭력에 의한 원죄(原罪) 원한이 더는 없는지 살펴보고 캐야 한다. 그래야만 수지 김의 원혼을 달래고 그 가족의 처절한 희생과 아픔을 함께 나누는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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