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영래/뇌물부패 악순환 끊자

  • 입력 2001년 12월 16일 18시 41분


최근 불거지고 있는 각종 게이트로 국민이 분노하고 있다. 서민들은 시장에서 단돈 1000원을 아끼기 위하여 상인들과 승강이를 벌이고 있는 판인데 소위 벤처기업가, 이와 관련된 정관계 인사, 그리고 이를 연결하는 정치 브로커들 간에는 현금 다발이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수십억원 또는 수백억원이 뇌물로 거래되고 있다.

▼꼬리 무는 정치권 비리▼

역대 정권이 정치부패를 뿌리뽑겠다고 수없이 외쳐댔지만 한낱 공염불에 지나지 않았으며 김대중 정권 역시 마찬가지다.

더구나 이번에 진승현 게이트가 더욱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이 사건에 현 정권에서 국가 사정 업무를 담당했던 인사가 관련되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장, 반부패특별수사본부장을 지내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으로서 대통령을 측근에서 보좌하며 막중한 사정업무를 담당했던 신광옥 전 법무부 차관의 1억원 로비자금 수수설은 수사 결과와 관계없이 이미 국민을 분노케 하고 있다. 신 전 차관은 관련설을 강력하게 부인하고 있지만 그의 로비 관련설은 최근 수뢰 혐의로 구속된 황용배 전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 사건과 더불어 현 정권의 도덕성에 크게 먹칠하고 있다. 국민의 정부는 정권의 도덕성을 회복하기 위해서라도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국민을 더 더욱 분노케 하는 것은 검찰의 태도다. 지난 1년 내내 우리 국민은 소위 진승현, 정현준, 이용호로 불리는 각종 게이트와 관련한 무수한 설만 들었지 아직도 어느 것이 진실인지 또는 허위인지 실체를 알지 못하고 있다. 고위층 인사가 연루되었다는 설이 있었으나 관련자의 정확한 이름도 없이 K, K, H, P 등 영문 이니셜로만 표시하여 의혹만 증폭되어 왔다.

진승현 게이트는 1년 전 검찰이 단순한 진승현씨 개인의 금융비리로 종결해 문제가 발생했다. 진씨 사건의 핵심은 진작부터 정관계 로비 네트워크인 것으로 보이는데 이를 단순 금융사건으로 축소해 수사하니 실체는 규명되지 않고 결국 유야무야하려다 이번에 문제가 되어 다시 수사하게 된 것이 아닌가. 검찰이 사건의 핵심을 제대로 알고 철저하게 수사했더라면 검찰의 위상이 지금과 같이 추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검찰은 진승현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진승현 리스트에는 현정권 실세를 비롯해 국회의원, 고위 공무원 등 정관계 인사들에게 준 금품 액수, 전달 시기, 횟수, 전달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적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심지어 진승현씨는 작성된 로비 리스트의 신빙성을 보장하기 위해 손도장까지 찍었다고 하는데, 검찰이 철저하게 수사하면 실체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검찰은 진승현 리스트를 조속히 공개할 뿐만 아니라 이에 대한 성역없는 수사를 통하여 사건의 실체를 밝혀야 한다. 검찰은 또 진승현 게이트에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에 대해서도 직접 수사해야 된다. 만약 이번에도 검찰이 실체 규명에 실패한다면 가뜩이나 추락된 검찰의 위상은 회복될 수 없음을 스스로 명심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기업과 유착된 정관계 로비 네트워크를 통한 정치부패의 근절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특히 권력 상층부와 검은 돈에 의한 뒷거래를 통하여 사업을 확장하고 또한 정관계 고위 인사들은 이를 통하여 막대한 정치자금을 마련하는 구태의연한 정치부패가 더 이상 확산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총체적 부패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있는 한 한국 사회는 발전하지 못한다. 정치자금법을 개정하여 정치자금 실명제를 도입하고 공직자 윤리법의 재산 공개 규정도 더욱 강화해야 한다. 국내 정치자금 거래를 감시 대상에서 제외한 돈세탁방지법도 개정하여야 한다.

▼돈세탁방지법 강화를▼

정치부패의 중간 고리 역할을 하는 정치 브로커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시 얼마나 많은 정치 브로커들이 선거에 흙탕물을 튀길지 걱정이 된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로비스트라는 이름하에 정치활동을 하는 정치 브로커의 활동을 공개토록 하고 제도화하는 대책도 마련되어야 한다. 음성적인 로비 활동을 조장하여 정치 부패를 양산하기보다는 차라리 로비스트등록법을 제정하여 공개적인 로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

김영래(아주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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