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김대통령, 이제 말해야 한다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35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12월6일 노르웨이 오슬로에서 열린 노벨평화상 제정 100주년 기념 심포지엄에서 ‘대화와 협력으로 세계 평화를 실현하자’는 연설을 했다. 김 대통령은 이제 ‘끼리끼리 부패 커넥션을 일소하겠다’고 말해야 한다. 세계 평화 실현보다 곳곳이 썩을 대로 썩은 나라의 환부를 도려내고 국민의 분노와 허탈감을 달래는 일이 시급하다.

11월8일 김 대통령은 민주당 총재직에서 물러나면서 국정 전념을 약속했다. 그러나 한달여가 지난 지금 김 대통령이 말한 국정 전념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 없게 돼버렸다. 국정 쇄신, 인적 쇄신 얘기도 쑥 들어갔다. 마치 대통령이 집권당 총재직을 사퇴한 것이 국정 쇄신의 모든 것인 양 그 후 김 대통령은 별다른 후속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차관의 ‘1억원 수수설’ 의혹이 보도됐다. 젊은 벤처사기범이 자신의 불법 거액 대출건을 잘 봐달라며 집권 여당에 끈을 댄 정치 브로커를 통해 당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던 신 차관에게 거액을 전달했다는 것이다. “한푼이라도 받았으면 할복자살하겠다”던 신 차관은 어제 사표를 내고 물러났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단순히 ‘누가 거짓말을 했느냐’를 밝히는 데 있지 않다. ‘진승현 게이트’는 1년 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하지 않고 덮어버린 의혹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검찰이 사건을 덮는 데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이 핵심 역할을 했다는 ‘혐의’도 여전하다. 다시 사건이 불거지면서 ‘누가 누구를 치려 한다’는 권력 내부의 ‘배후 음모설’까지 요란하다. 여권 실세들이 포함된 ‘진승현 리스트’설도 다시 수면으로 떠올랐다. 국정원 검찰 여권 실세에 청와대까지 연루된 최악의 권력형 부패인 셈이다. 그뿐인가. ‘이용호 게이트’도 있고 ‘정현준 게이트’도 있다. 모두 끼리끼리 선을 대고 나눠먹고 덮어주고 한 악취가 풍기는 집단부패의 모델이다.

개혁을 부르짖는 바로 코앞에서 권력형 비리의혹이 되풀이되어서야 민심을 얻을 수 없다. 이런 마당에 김 대통령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니 도대체 무슨 국정에 어떻게 전념한다는 것인가. 김 대통령은 우선 국민에게 사과해야 한다. 그리고 ‘진승현 게이트’의 철저한 수사를 검찰에 강력히 지시해야 한다. 권력기관의 인적 쇄신을 위해 필요하다면 국정원장 검찰총장의 경질도 머뭇거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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