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호택/자본주의 운동

  • 입력 2001년 12월 14일 17시 25분


골프는 미국에서도 ‘돈 많은 공화당원들의 스포츠’라는 별명이 붙어 있다. 돈과 시간이 적지 않게 드는 운동이라 선진국에서도 경제적으로 여유를 가진 계층이 아니면 즐기기 어렵다. 땅값이 비싼 한국과 일본에서는 회원권 값이 중산층의 집 한 채 값과 어슷비슷하다. 골프 인구가 200만명으로 늘어났고 신문과 텔레비전이 미국여자프로골프협회(LPGA) 무대에서 활약하는 한국 낭자들의 소식을 매일 전하지만 사회 일각에서는 골프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이 여전히 존재한다.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이 최근 체육면에 골프를 소개하는 기사를 실었다. 북한 사회과학원이 편찬한 조선말사전은 ‘들어온 말’(외래어) 골프를 ‘넓은 벌판에 9∼18개의 구멍을 파고 긴 채로 공을 쳐서 구멍에 차례로 집어넣는 방법으로 진행하는 오락’이라고 설명했다. 노동신문 기사도 이런 수준에서 담담하게 보도했다. 어찌 됐거나 식량이 모자라는 나라에서 넓은 벌판에 인민들의 먹을거리를 심지 않고 구멍을 뚫어 공놀이를 하는 것은 지극히 반사회주의적이다.

▷북한이 골프에 대해 자본주의적이고 퇴폐적이라는 비난을 접고 평양 인근 남포시에 36만평 18홀 규모의 골프장을 세운 것은 87년 총련 상공인과 그 가족들의 여가활동을 위해서였다. 작년 3월부터는 모란봉 유원지와 함북 나선시에서 골프장 건설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가끔 골프를 하는 모양이다. 평양골프장이 건설된 지 몇 해 후 ‘김정일 지도자가 9홀에서만 34타의 좋은 성적을 냈다’는 기사가 외지에 보도됐다. 18홀에 4언더 파를 친 셈인데 멀리건을 몇 개 받았는지에 관해서는 언급이 없었다.

▷골프에 대한 김 위원장의 깊은 이해가 없이는 노동신문이 대표적인 자본주의 운동을 무비판적으로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현대아산도 금강산 관광의 패키지상품으로 골프장을 세울 계획을 갖고 있다. 다만 서울에서 너무 멀어 흠이다. 골프장이 수익을 내려면 서울에서 가까워야 한다. 개성 인근에 골프장을 여러 개 건설해 주말 부킹난에 시달리는 한국 골퍼들의 부킹을 받으면 요즘 시들해진 금강산관광보다 벌이가 나을 성싶다.

<황호택논설위원>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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