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브로커와 어울리는 청와대

  • 입력 2001년 12월 13일 18시 09분


현 정부의 권력기관에 기생하고 있는 정치 브로커들의 실체가 드러나고 있다. 진승현(陳承鉉)씨의 구명을 위해 신광옥(辛光玉) 법무부 차관에게 1억원을 전달했다는 민주당 당료 출신 최택곤(崔澤坤)씨 의혹에 이어 전 아태재단 후원회 사무처장 황용배(黃龍培)씨가 금융감독원의 조사를 무마하기 위해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됐다.

최씨나 황씨의 경우를 보면 정치 브로커들이 얼마나 권력의 핵심에 속속들이 파고들어 있는지 다시 실감할 수 있다. 국가정보원의 2인자라 할 수 있는 제2차장으로부터 그 밑의 과장에 이르기까지 줄줄이 진씨 측 브로커와 어울린 공직자들의 모습을 우리는 이미 목격했다. 이번에는 그런 브로커를 색출해야 할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오히려 브로커의 ‘검은 손’에 연루됐다는 의혹이 불거져 나오고 있다. 여기에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직접 설립했고 현 정권의 산실이라고 할 수 있는 아태재단 전직 간부의 이권 청탁 사실도 드러났다.

신 차관은 자신이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 시절 최씨를 업무 차원에서 4, 5차례 접촉했다고 밝혔지만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이 민주당의 교육특위 비상근 부위원장 직함을 가진 최씨를 한두 번도 아닌 4, 5차례나 만나야 할 ‘업무’란 도대체 무엇인지 우리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최씨와 같은 민주당의 비상임 부위원장은 수백명에 이르며 그들은 대부분 전문 업무나 정치적 활동을 수행하기보다는 정치권의 ‘주변 인사’에 불과하다.

최씨나 황씨의 청탁 행위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한 것 같다. 계속 드러나고 있는 진씨의 로비 활동 규모를 보면 그의 하수인 역할을 한 정치 브로커나 이들의 접근 대상이 된 전현직 고위 인사들이 앞으로도 몇 명이 더 드러날지 장담할 수 없다.

왜 이처럼 정치 브로커들이 활개치는 세상이 됐는가. 특정 지역의 정서나 연고를 중심으로 권력기관 주변에 형성된 ‘끼리끼리 문화’가 결국은 부패와 부정 그리고 청탁과 이권의 고리를 형성했다. 정치패거리 문화도 그 원인 중 하나다. 최씨나 황씨처럼 과거 동교동 주변에서 활동하던 사람들이 각종 이권을 경쟁적으로 챙기면서 허황한 권력 사칭 현상이 난무하게 된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기본적으로 권력 스스로 주변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이다. 권력기관에 기생하고 있는 이들 브로커들이 사라지지 않는 한 깨끗한 정부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개혁을 한다고 큰소리를 쳐 보았자 헛일일 것이다. 현정권은 우선 주변의 ‘청소’부터 철저히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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