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욱 한심스러운 일은 지난해의 이질, 올 여름 콜레라 소동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허술한 초기 대응이 병의 확산을 불러왔다는 사실이다. 김밥을 사 먹은 사람들이 설사 증세로 집단 입원했는 데도 방역당국이 이를 안 것은 나흘이나 지나서였다. 그동안 문제의 도시락 업체는 ‘이질 김밥’을 계속 만들어 공급하고 있었으니 가뜩이나 전염력이 강한 이질이 확산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래서야 초기대응을 목표로 하는 ‘설사환자 모니터링제도’는 있으나마나다. 신고를 미룬 병원도 그렇지만 방역당국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최근 수년 동안 이질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일선 병원과의 공조체계를 강화하는 것은 방역당국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다.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는 것이 국가의 기본 역할인데도 현재 정부는 이를 소홀히 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업소에 대한 허술한 관리도 그냥 넘길 일이 아니다. 방역당국은 전염병이 돌 때마다 ‘업소의 위생 시설을 개선하고 종업원 교육을 강화하겠다’고 공언해왔으나 말뿐이었다. 이는 서울시가 최근 시내 도시락 업체를 점검한 결과에서도 드러난다. 조사 대상의 36%가 규정을 위반했고 유통 기간이 지났거나 바퀴벌레가 나온 도시락까지 적발됐다. 이번 이질 소동이 도시락 업체 종업원이 병에 걸린 채 김밥을 만드는 바람에 시작되었다는 것도 우리의 한심한 위생 수준을 말해주는 증거다.
방역당국은 우선 이질 확산을 막기 위한 모든 조치를 취해야 한다. 또한 말만 앞세울 게 아니라 실제로 업소 위생관리를 철저하고도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한다. 국민도 위생적인 생활 습관을 길러야 한다. 월드컵이 열려 세계의 눈이 우리나라로 쏠리는 내년 이런 어이없는 소동이 다시 벌어져 국가 이미지가 실추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