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용만/경제팀 이젠 물러날때

  • 입력 2001년 12월 13일 18시 07분


최근 경제 관료들의 언행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들에게 경제를 맡길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자주 든다. 지난달 27일 주가가 단기간 급등하고 금리는 폭등세, 환율은 폭락세를 거듭하는 가운데 정부와 한국은행은 금융정책협의회를 개최해 주식·채권·외환시장에 대한 시각과 대책을 논의해 발표했다.

▼公자금등 책임 ‘나 몰라라’▼

이날 회의를 주재한 김진표 재경부 차관은 회의 뒤 브리핑에서 “최근 주가가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 “PER를 감안하면 우리 주가가 800은 되어야 한다는 측정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다음날 주가는 김 차관의 발언이 무색하게 38포인트나 대폭락해 주식시장에 참여했던 개미들은 아마 상투를 잡지나 않았는지 모르겠다. 물론 주가가 1000 이상 돌파하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정책담당자가 구체적인 수치까지 들먹이며 시장에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아마 김 차관은 얼마 전 ‘Buy Korea’를 외쳤던 현대증권 이익치 회장을 대신해 주가 떠받치기에 나선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또한 10월 강현욱 민주당 정책위원장과 강운태 제2정조위원장이 금융통화위원회를 앞두고 금리인하를 기정 사실화한 발언 때문에 채권시장과 국채 선물시장이 한바탕 요동을 쳐 한국은행이 여러 차례 나서 간신히 시장을 안정시킨 적이 있다. 그리고 최근 한 설문조사에서 현장전문가들이 경제 팀의 열등생으로 꼽은 이기호 청와대 경제수석도 정확히 1년 전 신중치 못한 신용금고 추가사고 발언으로 한바탕 난리를 치른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그가 얼마 전 조찬모임에서는 3·4분기 경제성장치를 미리 발표, 한국은행의 공식발표에 김을 뺀 것은 물론 금융시장에 영향을 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이같이 한 나라의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정책 운용자는 그들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시장에 주는 충격과 영향이 크기 때문에 언행에 신중을 거듭해도 모자람이 없다.

특히 최근 발표된 공적자금에 대한 감사원의 특감결과에 대한 정부당국자의 대응을 보면 실망과 분노를 금할 수 없다. 공짜자금이 된 공적자금은 1997년 11월 금융위기 이후 올해 10월 말까지 천문학적인 150조6000억원이 투입되었다. 특감결과 정부가 부실금융기관에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판단 잘못으로 11조5000억여원이 과다하게 잘못 지원된 것은 물론 공적자금을 받은 부실기업주, 금융기관의 임직원은 7조원 이상 재산을 빼돌린 것으로 확인됐다. 하여튼 공무원의 실수로 헛되이 사용된 공적자금은 30조원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책임지는 공무원은 없다. 국민의 혈세를 퍼준 공무원은 책임이 없고, 돈을 받아간 쪽에만 책임을 지우는 꼴이 되었다.

이번 조사 결과 공적자금 중 최소한 30조원 이상은 회수불능이며 금융기관에 출자한 44조원도 회수하기까지에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부실금융기관을 살리거나 정리하는 데 들어간 공적자금의 절반 이상이 회수가 불가능해 그 이자와 기회비용까지 합칠 경우 139조3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

이는 결국 국민부담으로 돌아올 것으로 한국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이 같은 손실 예상액은 현재 투입된 공적자금과 비슷한 규모이며 내년에 국민이 내야 될 세금보다 많은 금액이다. 우리나라 1300만가구당 평균 1000만원가량 부담해야 하는 어마어마한 금액이다. 이번에도 감사원의 지적이 나오자 정부는 부랴부랴 뒤늦게 대책을 급조해 내어놓았다.

▼도덕 불감증에 빠져▼

사정이 이러한 데도 불구하고 경제를 총괄하는 진념 부총리는 지난주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공적자금 관리부실에 대한 책임문제는 앞으로 몇 년 정도 지나야 판단할 수 있을 것”이라며 “공적자금 관리부실이란 지적에 동의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아직 진 부총리는 상황의 심각성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아마도 장관직을 어느 누구보다도 오래 수행해 직업이 장관이 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져 도덕불감증에 걸린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이제 진퇴의 용단을 내려야 될 충분조건이 충족된 것 같아 더 이상 필요조건을 제시할 필요는 없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제 팀에게 때가 된 것 같다.

윤용만(인천대 교수·경제학 본보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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