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경아의 책 사람 세상]당신이 재외동포였다면…

  • 입력 2001년 11월 30일 17시 59분


1999년 시행된 재외동포법이 중국과 러시아 등에 사는 재외동포를 적용 대상에서 제외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기껏 제정된 재외동포법이 정부 수립 뒤 해외로 이주한 동포들에게만 적용한다는 교묘한 법조문으로, 일제 강점기에 타의에 의해 뿌리를 뽑히는 아픔을 견뎌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을 무시한 것이다. ‘헌법재판소가 재외동포법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렸다’는 보도가 아니었으면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지나가지 않았을까 싶다.

인권 신장이라는 면에서 쌍수를 들어 환영해야 할 판결이지만 오히려 씁쓸하다. 이른바 민족이라는 것이 원래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상의 공동체”일 따름이라는 베네딕트 앤더슨(‘민족주의의 기원과 전파’·사회비평사·1996)의 날카로운 지적을 새삼 다시 확인하게 하는 현실이다.

앤더슨에 의하면 혈통이나 언어, 문화 등 우리가 민족의 구성요소라고 알고 있는 그 무엇도 민족이라는 것의 정체성을 확정짓지는 못한다. 하지만 민족이라는 개념이 아무리 허구라고 하더라도, 이른바 ‘단일민족국가’를 자처하는 나라에서 이토록 그 허구가 편의주의적이고 얄팍했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일본의 사회철학자 이마무라 히토시의 ‘근대성의 구조’(민음사·1999)는 그 해답을 쉽고 명백하게 보여준다. 우리가 나라 바깥에 있는 동포를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근대적 민족 국가, 즉 ‘우리 나라’라는 것이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작용이라는 것이다.

프랑스 현대철학의 거두인 푸코가 명쾌하게 밝힌 바, ‘우리’를 선택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와 다른 ‘남’을 배제하는 것이다(‘감시와 처벌’·나남·1994). ‘우리’와 ‘남’을 가르기 시작하면 ‘우리’ 안에서도 ‘중요한 우리’와 ‘덜 중요한 우리’가 생긴다.

이런 역설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우리’ 자신이 가장 중요하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배제당하고 차별당하는 사람의 위치에 스스로를 놓아보아야 한다. “우리가 집단 폭력에 가담하지 않기 위해서는 스스로 희생자의 위치에 서기를 각오하는 수밖에 없다.”

물론 ‘중요한 우리’가 누리던 혜택을 ‘덜 중요한 우리’에게 나누어주는 것은 큰 결단을 필요로 한다. 당장 법무부에서는 현실적인 이유를 들어 난색을 표한다고 한다. 하지만 ‘우리’ 하나하나가 일제 강점기에 눈물을 뿌리며 고향 산천을 떠나가 낯선 곳에서 힘겹게 살아야 했던 재중·재러시아 동포의 입장에 스스로를 놓아볼 수 있다면, 현실적인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지 않을까.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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