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기관투자가들 "증권사상대 손해배상 소송"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9시 07분


《투신사가 부도난 회사채의 인수업무를 담당한 증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준비하는 등 ‘채권자 권리 찾기’에 나섰다.이는 지난 수년간 소액주주들이 부실감사를 한 회계법인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한 것과 맥락을 같이하는 것. 대한투자신탁은 부도난 A사의 회사채 인수업무를 맡았던 S증권을 상대로 내달 초 손해배상청구소송을 낼 계획이다. 투신사는 대표적인 기관투자가로 이 같은 소송에 은행 보험 등이 가세할 경우 금융계 전체가 소송 회오리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

대투의 채권운용 관계자는 “투자자를 위해 회사채발행기업의 경영을 감시해야 할 증권사가 자기 의무를 게을리 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며 “증권사가 일정 부분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하는 근거는 투신 등이 증권사로부터 회사채를 살 때 작성하는 ‘무보증회사채 위탁계약서’. 이 계약서에는 ‘회사채 발행회사는 증권업협회가 정한 채무비율 등을 지켜야 하고 회사 자산에 중대한 변동이 있을 때는 수탁회사(증권사)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재무특약조항이 명시돼 있다.

지금까지는 계약서작성이 요식행위에 불과해 회사채발행기업은 발행자금을 마음대로 사용했고 증권사도 기업에 대한 감시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기관투자가의 이런 움직임에 증권사들은 바짝 긴장하면서도 “외국처럼 주간사와 수탁회사가 분리돼 있지도 않고 인수경쟁 때문에 수탁수수료를 받지도 않았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책임을 묻는다면 앞으로 회사채 발행을 중개할 증권사는 하나도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투신사들은 또 기존의 형식적인 수탁계약서를 폐기하고 회사채 발행회사와 수탁회사가 지켜야 할 내용을 꼼꼼히 기록한 수탁계약서를 만들어 우선 신용등급 BBB급 이하 기업들이 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으면 회사채를 사지 않을 방침이다.

대한투신 권경업 채권운용본부장은 “외환위기 이후 회사채가 무보증채로 전환되고 회사채발행 규모가 연간 70조원에 이르는데도 채권투자자를 위한 보호장치가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며 “기업과 수탁회사가 새로운 계약서를 받아들인다면 기관투자가들도 BBB급 이하에도 투자할 수 있어 회사채시장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직접금융시장이 발달한 미국의 경우 인수업무를 맡은 증권사가 유가증권을 발행하는 기업평가에 깊숙이 개입해 인수업무를 맡을지 여부를 결정하며 투자자들은 모건스탠리 메릴린치 등 인수 증권사의 공신력을 믿고 회사채 등에 투자하고 있다. 한국신용평가 김선대 상무는 “미국 등 금융 선진국에서는 기업과 수탁회사의 의무사항을 꼼꼼히 기록한 개별화된 수탁계약서가 일반화돼 있으며 수탁회사가 기업 감시를 철저히 하고 있다”며 “기관투자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자본시장 투명화에 기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병기기자>ey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