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추적]영하의 밤에 버려진 노숙자들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8시 40분


갑작스러운 추위가 몰아닥친 25일 밤. 서울역 대합실에서 추위와 영양실조를 이기지 못한 40대 노숙자가 숨진 채 발견됐다.

신원이 밝혀지지 않은 이 남자는 다른 노숙자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혼자 의자에서 웅크린 채 잠을 자다 변을 당했다. 이처럼 거리를 떠도는 노숙자들은 이미 들이닥친 ‘동장군(冬將軍)’ 앞에서 속수무책인 처지다.

▽서울역 지하도 르포〓서울역 앞 날씨 전광판이 최저기온 영하 5도를 가리키던 26일 밤 11시경. 역 대합실에서 떼를 지어 TV를 보던 노숙자들은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다. 밤 12시에 대합실이 문을 닫아 그 전에 잠자리를 찾아야 하기 때문. 몇몇은 낮에 벌어둔 돈으로 근처 쪽방으로 가거나 ‘노숙자 쉼터’로 향했다.

그러나 일정한 곳에 머물지 않고 떠돌이생활을 하는 이른바 ‘거리노숙자’들은 서울역 지하도로 내려갔다.

이곳에는 이미 40여명의 노숙자들이 서너명씩 혹은 홀로 밤을 지새울 채비를 하고 있었다. 신문지만 깔린 바닥에 이미 쓰러져 잠이 든 사람. 초저녁부터 술에 취해 화투를 치다가 싸움이 붙어 돈을 움켜쥐고 목청을 높이는 사람.

노숙자 지원단체인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자원봉사자들이 보호시설로 가자고 설득해도 옹기종기 모여 담배를 피우던 이들은 혀 꼬부라진 소리로 “괜찮아”를 연발했다. 이곳에서 일주일째 노숙을 한다는 전모씨(67)는 “추워서 잠을 잘 수가 없어 어제는 밤새 돌아다녔다”고 하소연했다.

술과 추위에 얼굴이 벌개진 전씨는 몇 년 전부터 종교단체의 보호시설을 전전하며 살아왔지만 6개월 이상을 버티지 못하고 뛰쳐나오기를 수차례. 돌아오는 곳은 언제나 서울역이었다.

이런 거리노숙자들이 서울역과 시청 부근에만 300여명이 몰려 있다.

▽현황과 문제점〓12일부터 노숙자 현장상담을 시작한 서울시와 다시서기 지원센터에 따르면 11월 현재 서울의 거리노숙자는 375명.

10월 말에는 432명으로 국제통화기금(IMF)체제였던 98년 10월 말의 250명보다 1.5배 이상 늘었다. 문제는 거리노숙자들이 보호시설에 오래 머물지 못한다는 것. 그 가장 큰 이유는 술이다. 이들 노숙자들은 대부분 알코올중독자에 가까워 술을 규제하는 쉼터에서 오래 버티지 못한다.

서울역 주변 거리노숙자들의 80∼90%는 최소 한번 이상 쉼터를 거친 사람들이라고 한 자원봉사자는 말했다.

자연히 이들에 대한 민원도 쇄도하고 있다. 관할 중구청은 이들이 구걸 부녀자폭행 노상방뇨 등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는 행위를 일삼고 있다며 최근 서울시 등에 문제해결을 건의했다.

▽대책은 없나〓서울시 노숙자대책반 관계자는 “사실상 대책이 없다”고 말했다.

보호시설로 가지 않겠다고 고집하는 사람들을 강제로 끌어갈 수는 없다는 것.

이 관계자는 “각종 단체에서 이불이며 옷가지 등과 식사를 나눠줘 동사(凍死)할 우려가 적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다시서기 지원센터의 서정화(徐貞花) 실장은 이들을 직접 찾아가는 ‘현장 일시 보호시설’이 그 대책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수용시설에 적응 못하는 사람들이 노숙 현장에서 쉽게 찾아와 세탁 목욕 등을 하고 다음날 아침 나갈 수 있는 시설을 만들자는 것. 그러나 이런 시설을 주변 시민들이 꺼려하는 것도 문제라고 서 실장은 지적했다. 서 실장은 또 “노숙자 중 사회에 복귀한 사람들도 많다”며 “이들을 이웃으로 생각하는 마음가짐이 절실한 때”라고 말했다.

<민동용기자>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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