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송영언/담배와 대권

  • 입력 2001년 11월 27일 18시 29분


담배와의 전쟁이 한창이다. 직장마다 담배를 끊는 사람이 많아졌다. 아무데서나 담배 피우기도 어려워졌다. 화장실이나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는 사람을 보면 마치 ‘왕따’를 당한 듯 초라하기 그지없다. 사석에서도 담배를 꺼내 물려면 옆 사람의 눈치부터 살펴야 한다. 집에서는 아이들의 눈초리가 이상해진다. 외국에서도 대부분의 건물이 금연구역이다. 우리나라도 내년 하반기부터는 많은 건물이 금연 공간으로 지정되고 위반자에게 10만원의 과태료까지 부과된다니 흡연자가 설 땅은 점점 좁아만 지는 것 같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도 젊어서는 담배를 많이 피웠다. 그러다가 어느 날 뚝 끊었다. 그의 야당총재시절 일화 하나. 담배를 피우는 기자들에게 금연을 권하며 말했다. “남자가 세상에 나와 뭔가를 하나는 이루고 죽어야지. 그래서 담배라도 하나 끊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그 후 독한 마음을 먹고 담배를 멀리했고 결국 성공했다.” 김 대통령은 그 후로도 정치인들에게 지도자가 되려면 담배를 끊어야 한다고 권유하고 있다.

▷민주당 대권주자들이 최근 잇따라 금연을 실천하고 있다. 김근태(金槿泰) 고문에 이어 노무현(盧武鉉) 고문이 추석 직전 몇십년 피워 오던 담배를 끊었다. 한화갑(韓和甲) 이인제(李仁濟) 고문은 몇 년 전부터 담배를 멀리하고 있다. 큰일을 앞두고 각오를 새로 다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꼭 그 같은 이유가 아니더라도 정치지도자가 되려면 누구보다도 건강해야 하고, 이를 위해 우선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마도 담배를 끊는 일이라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20세기 국가지도자들 중에는 담배를 즐겨 피우는 사람이 많았다. 영국의 윈스턴 처칠 총리나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대통령이 시가를 물고 있는 모습에서 매력과 카리스마를 느낀 사람이 많았다. 그러나 21세기 국가지도자에게 담배는 적(敵)이 돼 가는 분위기다. 선진국일수록 선거 때면 거창한 것보다는 암 연구비 증액 등 국민의 건강과 보건을 위한 정책을 공약으로 많이 내놓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앞으로는 어쩌면 ‘금연’과 이를 위한 정책을 대선공약으로 내놓는 사람이 나올지 모르겠다.

<송영언논설위원>younge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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