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심규선/두 얼굴의 일본

  • 입력 2001년 11월 25일 18시 25분


22일 일본 총리관저와 방위청 등은 한국의 미사일 실험 발사를 놓고 소동을 벌였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이 발사된 것 아니냐고 호들갑도 떨었다. “한국 정부가 미리 알려주지 않았다”는 잘못된 불만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그런 일본이 25일 요코스카(橫須賀) 구레(吳) 사세보(佐世保) 기지에서 해상자위대 함정 3척을 일제히 인도양으로 발진시켰다. 미국의 테러전쟁을 지원한다는 구실 아래.

이웃 나라의 예고된 미사일 실험발사에 이처럼 신경을 곤두세우는 일본이 자위대 함정 파견이 주변 국가들에 주는 우려와 불안감에 대해서는 왜 그렇게 무감각한 것일까.

일본은 미군을 지원하기 위해 일사천리로 새 법까지 만들었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유엔 평화유지활동(PKO) 협력법도 고쳐 자위대의 활동영역과 무기사용 범위도 대폭 늘릴 예정이다. 평소 자위대의 활동에 비판적이던 야당들의 목소리는 거의 들리지 않는다.

어떤 의미에서 자위대의 활동 강화는 역사교과서 문제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의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보다도 더 심각한 문제다. ‘과거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의 문제이고 내일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한국 중국 등 이웃 나라에서조차 견제와 우려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지 않는다. 일본이 내세우는 ‘테러 방지’와 ‘국제 공헌’이라는 명분에 밀린 때문인가.

일본에선 “자위대의 활동 폭이 넓어졌다고 무조건 ‘군사대국화’나 ‘우경화’로 볼 필요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보통국가로 가기 위한 과도기적 진통”일 뿐이라는 것이다.

수긍할 대목이 없지 않지만 “우리가 하는 일에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느냐”고 강변하는 요즘 일본의 분위기는 걱정거리다. 그런 일본인들에게 말하고 싶다. 이웃 나라의 정상적인 군사훈련에 과잉 반응하기보다는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이 일본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의구심을 더는 일이라고.

심규선<도쿄특파원>kssh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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