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구자룡/누구를 위한 징벌인가

  • 입력 2001년 11월 22일 18시 36분


“미국 테러사건 이후 각국 항공사가 승객 한 명, 수익노선 한 곳이라도 찾기 위해 혈안이 돼 있는데 수익노선을 스스로 없애는 것은 ‘자해성 징계’일 뿐입니다.”

대한항공의 한 임원은 건설교통부가 21일 98년 상하이(上海) 화물기 추락사고에 대한 제재로 이 구간 화물노선 면허 취소를 통보해 오자 이렇게 푸념했다. 그는 “국가 재산인 국제항공노선 운항권을 민간항공사에 대한 징계 수단으로 사용할 수 있느냐”고 항변했다.

당사자인 대한항공이 아니더라도 업계에서는 정부가 항공사의 국제항공 노선권을 스스로 없애거나 줄이는 조치를 잇따라 내놓는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이 많다. 선진국도 사고 항공사에 대해 관계자들을 형사처벌하고 과징금을 무겁게 물리기는 하지만 수익성이 떨어지지 않는 한 항공노선을 스스로 없애거나 줄이지는 않는다. 노선권은 항공사의 권리이기 이전에 정부가 상대국과 협상을 통해 1 대 1로 주고받은 국가재산이기 때문이다.

인천∼상하이간 화물노선 면허를 취소함으로써 한해 300억원가량의 이 운항시장은 고스란히 중국 둥팡(東方)항공이 차지하게 됐다.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으로 미국이나 유럽으로 가는 화물이 크게 늘어나는 시점에 국적기의 유일한 상하이 화물노선은 없어졌다.

건교부는 98년에도 대한항공 여객기의 김포공항 활주로 이탈사고를 이유로 서울∼도쿄(東京)간 여객기 운항을 영구히 주 400석씩 줄이도록 했다. 좌석난을 겪고 있는 이 노선의 승객들은 당연히 다른 나라의 여객기를 이용한다.

여객이나 화물노선을 폐쇄하거나 줄이면 항공사의 영업에도 타격이지만 항공편을 이용하는 기업이나 승객들도 불편을 겪게 된다. 전화회사가 문제를 일으켰다고 해서 일정 기간 해당 업체의 국제전화 회선을 폐쇄하지는 않는다.

“항공법에 관련 규정이 있으므로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건설교통부 관계자의 설명을 듣고 있으면 ‘누구의 무엇을 위한 공무원이고 징벌행정인가’ 하는 답답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구자룡<경제부>bon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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