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쌀정책 새틀 짜기 시급하다

  • 입력 2001년 11월 21일 18시 57분


농민단체 회원들이 양곡유통위원회의 쌀 수매가 인하 건의에 항의하는 대규모 시위를 벌여 올 수매가 결정이 순탄하지 않을 전망이다. 농림부장관 자문기구의 건의안에 불과한데도 농민들이 대규모 시위에 나선 것은 국회 동의 과정에서 수매가 인상폭이 커지도록 압력을 넣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양곡유통위원회는 작년에도 사실상 동결을 뜻하는 0∼2% 인상안을 건의했지만 국회를 거치면서 4%로 올라갔다. 우리 쌀값이 국제 시세의 5∼6배나 되는데도 매년 거르지 않고 오르는 이유는 수요공급의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형성되지 않고 국회에서 정해지는 특이한 가격결정 구조 탓이다.

얼마 전 헌법재판소에서 지나친 선거구 인구편차에 관한 위헌 판결이 있었지만 농촌과 도시의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4대 1이나 돼 국회에서 과다 대표되는 농촌 출신 의원들이 농민표를 의식해 앞장서 수매가를 올린 결과다. 내년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농민표를 의식한 정치권이 작년 수준의 인상을 검토하고 있다고 하니 국제 시세와 차이가 더 벌어질 수밖에 없다.

시위 농민들은 수매가가 생산비에도 못 미친다고 주장하지만 설득력이 약하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쌀 농사의 순수익률이 48.3%로 높은 편이다. 쌀 농사에서 비교적 이익이 많이 나니 일부 지역에서는 물길이 닿지 않는 다랑논에까지 쌀을 재배하는 것이다.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쌀값이 높아 생산이 늘어남으로써 남아도는 쌀이 올해에는 1000만섬에 이르고 재고관리 비용으로만 수천억원이 들어가고 있다. 이런 판에 현재 의무 수입량 4%로 막고 있는 쌀 시장 개방 폭이 2005년부터는 늘어날 수밖에 없다.

정부는 농민소득을 높이고 쌀값을 중장기적으로 국제 시세에 접근시키기 위해 세계무역기구(WTO)에서 인정하는 직접지불제 등을 확대하는 정책을 지금부터 서둘러야 한다. 쌀값 인하는 농가소득 보전과 병행돼야 한다. 우리의 농촌은 아직도 가난하다. 평균 농가소득이 도시 근로자의 80% 선에 불과하다.

시위를 벌이는 농민들도 정부가 언제까지 쌀값을 받쳐주는 정책을 지킬 수 없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쌀값이 지금처럼 높은 가격대를 유지하다가 쌀 시장이 대폭 개방되면 일순간에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는 엄청난 충격을 겪게 된다. 우루과이라운드 이후 8년을 허송해 시간이 별로 없다. 쌀 시장 본격 개방에 앞서 쌀값을 연착륙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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