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고르바초프

  • 입력 2001년 11월 19일 18시 24분


역대 소련 지도자들은 한국인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한민족에게 6·25의 아픔을 겪게 한 주요 당사자였던 이오시프 스탈린은 물론 83년 소련이 대한항공 여객기를 격추시킬 당시의 유리 안드로포프에 이르기까지 소련 지도자들은 우리에게는 무시무시한 인물이었다. 한국인을 소련 지도자들에 대한 뿌리깊은 공포에서 벗어나게 한 사람은 미하일 고르바초프였다. 그는 90년 한소 수교의 결단을 내림으로써 ‘북극곰’ 소련이 한국의 친구가 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벌써 11년 전의 일이다. 그런데도 어제 있었던 ‘인촌(仁村)기념 강좌’ 강연을 위해 내한한 고르바초프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은 여전하다. 수교 파트너였던 노태우(盧泰愚) 전대통령이 91년 양국 정상회담이 열린 제주 신라호텔 바로 그 자리에서 만찬을 베풀었고 여러 언론사가 다투어 인터뷰에 나섰다.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을 비롯한 한국의 지도자들도 그를 만나 고견을 들었다. 고르바초프 역시 수교 당시의 비화 등을 얘기하며 한반도의 장래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시했다.

▷고르바초프는 재임 중 독일통일과 냉전종식을 일궈내는 데 크게 기여한 세계적 인물이다. 그러나 그것이 전부라면 10년 전 권좌에서 밀려난 그는 지금쯤 잊혀진 인물이 됐을 것이다. 그가 국제무대에서 여전히 인기를 누리는 것은 퇴임 후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강대국 지도자로서의 경험을 바탕 삼아 고르바초프재단 이사장과 국제환경보호단체인 국제녹십자사 총재 등으로 일하며 세계적 이슈에 개입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재단은 최근에는 ‘첨단기술 펀드’ 창설을 추진중이라고 한다.

▷국제문제에 대한 그의 분석과 전망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그는 작년 12월 당선자 신분이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에게 “지난 10년간 미국의 외교정책은 냉전의 승전국 정책처럼 추진됐으며 그 결과 평화 대신 불평등과 긴장, 미국에 대한 적대감이 심화됐다”고 지적하는 공개서한을 보냈다. 9·11 테러는 그가 지적한 적대감이 표출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고희를 맞은 고르바초프의 활동은 퇴임 대통령도 얼마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방형남논설위원>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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