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홍준형/'정의검사'는 어디로 갔나

  • 입력 2001년 11월 18일 18시 26분


이용호씨 주가조작사건에 대한 특별검사제 협상이 진행되자 어느 검찰 고위간부의 입에서 특검제 위헌 주장이 나왔다. 특검제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은 터에 자연스레 개인 의견을 표명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논란이 없을 수 없었다. 검찰에 있어 특검제란 검찰권에 대한 불신의 상징이자 그것을 가시화하고 제도화하는 것이기 때문에 나름대로 이해가 가지 않는 바도 아니다.

그러나 논란이 있은 후 채 며칠도 지나지 않아 차마 얼굴을 들 수도 없는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검찰이 또다시 축소은폐 수사의 의혹을 받게 되었기 때문이다. 국정원 전 간부들과 여당의원이 ‘정현준 게이트’니 ‘진승현 게이트’와 관련해 금품을 수수했다는 보도가 나오고 국회에서 논란이 일자 검찰 스스로 혐의없다며 서둘러 마무리지었던 수사를 떠밀리듯 재개하기에 이르렀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마당에, 한두 번도 아니고 과연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그 어떤 변명도 구차할 뿐이다. 여당에서조차 ‘검찰이 국정원 하부기관이냐’는 비난이 나오는 상황이다. 정말 어처구니없고 기가 막힌 일이다. 역사는 김대중 정권 4년의 검찰을 치욕의 수난시대로 기록할 것이다.

검찰 일각에서는 울화에 가까운 분노의 원성도 들린다. 또 대부분의 검사들, 즉 일선 검사들에게선 사명감 하나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법을 수호하기 위해 분투하고 있는데 어째서 이런 일이 그치지 않는지 모르겠다는 허탈한 한탄도 들린다. 출세욕에 사로잡힌 소수의 정치검사들을 질타하기도 하고 언론의 무책임과 야비함을 벼르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밤이 늦도록 사무실 불을 밝히며 열악한 조건에서 애쓰고 있는 일선 검사들의 처지를 생각하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곰곰 생각해보면 아무래도 문제의 뿌리는 더 깊은 데 있는 것같다. 왜 하필이면 소수의 정치검사들이 중요한 직책을 맡아 검찰 전체의 물을 흐리는 것인가. 불의와 타협하지 않고 공명정대하게 법을 집행하여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명감에 불타던 젊은 검사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소수의 정치검사들 역시 젊은 한때 그렇게 사명감에 투철했던 그들이 아니었던가.

검찰은 범죄의 수사와 소추를 통해 개인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막중한 권력을 행사한다. 어느 정도 민주화가 진전된 자본주의 사회에서 권력은 검찰이나 경찰, 국가정보원 같은 억압적 국가기구에서 나온다. 그런데 그 강력한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문제다.

이들은 그 권력을 대다수의 국민들이 모르는 가운데 행사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경우에 따라 정치권으로부터의 ‘아주 특별한 부탁’을 받아 줄 수도 있는 재량이 있다고 스스로 양해하는 경향이 있다. 이번에 검찰의 신뢰를 다시금 땅에 떨어뜨렸던 국정원 간부들에 대한 ‘봐주기수사’ 문제도, 사실관계는 더 밝혀야 하겠지만, 그와 같은 권력서클의 내부에서 끼리끼리 구축하는 ‘양해의 네트워크’를 보여주는 사례였다.

그러나 때로는 이들 엘리트의 내부에서 암투가 일어나거나 크고 작은 비리의혹이 드러나면서 그 양해의 네트워크가 노출되기도 한다. 이들이 지나는 길에 매복하고 있던 언론과 시민단체들이 축소은폐수사니 봐주기니 하는 깃발을 날리면서 빗발같이 화살을 쏘아대면 그제서야 자신들의 네트워크에 기술적 장애가 발생했음을 인지한다. 그러나 더러 반성을 하기는 하되, 권력의 윤리는 아직 먼 이야기다.

구정권의 권력비리를 그렇게도 질타했던 김대중 정부는 각종 ‘게이트’를 양산하면서 고질적인 권력의 함정에 어쩌면 더 깊숙이 빠져들었다. 이제 대안은 없다. 남은 기간동안이라도 촌음을 아껴 철저한 개혁을 단행하는 수밖에.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구와 제도들을 개혁하기 위한 기초공사라도 해야 한다. 그리고 그 기초공사는 제로베이스에서 권력의 지배구조를 깨려는 삽질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국민들은 도대체 검찰과 국정원 등 권력기관들의 소행이 과연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국가’가 할 일이었는지 반문한다. 비리의 끝은 어디인가. 그 얼마나 많은 나날을 다시 또 청문회, 재수사 등 과거 정권의 비리를 캐내는 데 써야 하는가.

홍준형(서울대 행정대학원교수·공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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