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한국의 시대 온다 '신바람 한국 가미카제 일본'

  • 입력 2001년 11월 16일 18시 15분


신바람 한국 가미카제 일본/요시카와 료조 지음/203쪽 8000원 다락원

1989년 삼성전자 CAD(컴퓨터를 이용한 설계) 개발을 위해 한국을 방문했다가 94년 정식 입사한 일본인 요시카와 료조(吉川良三·61) 상무. 65년 세계적 기업인 히타치(日立) 제작소에 입사해 20여년간 주로 소프트웨어 개발에 매달려 왔던 그는 CAD 설계방식의 전문가. 89년 NKK(일본 강관) 일렉트로닉스 본부 개발팀장으로 자리를 옮겨 차세대 CAD를 개발했으며 통산성 산하 능률협회 고문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는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물질보다는 ‘정신’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전후 일본의 성장을 일군 세대의 한 사람인 그는 아무리 어려운 조건이라도 정신력만 있다면 해결해 나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가 한국과 일본을 보는 키워드도 ‘정신’에 관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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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독신생활 7년반 동안 경험을 담아 낸 책의 제목도 ‘신바람 한국 가미카제 일본’(다락원간)이다. 일본에서 ‘신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한국’(神風がゆく韓國·白日社간)이라는 제목으로 동시 출간했다.

한국의 신바람을 일본어로 가미카제(神風)라고 번역했지만 그가 생각하는 한국의 신바람은 新風(신풍)이나 信風(신풍)에 가깝다. 가미카제든 신바람이든 ‘일정 조건만 갖춰지면 평상시 자기 능력으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의 불가사의한 힘을 치솟게 하는 기운’이라는 의미에서는 같다. 그러나 한일간의 바람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 한국의 신바람이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만 갖추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인데 비해 일본의 가미카제는 ‘지도자나 윗사람의 리더십에 의해 의도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라는 것.

“가미카제의 기원은 가마쿠라바쿠후(鎌倉幕府·일본 최초의 무인정권)시대에 원나라가 쳐들어 왔을때 (1274년, 1281년) 우연히 태풍이 불어 일본을 구해 주었다는 데서 비롯된다. 신이 일으킨 바람이라는 의미다. 일본의 가미카제는 다시말해 신에 의존하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 신바람의 기원은 가미카제와 다르다는 것이 그의 주장. “668년 신라가 당과 동맹하여 고구려를 멸하고 한반도를 통일 한 후 동맹군이었던 당과 싸울 때 전장의 주역은 옛고구려와 백제지역의 농민들이었다. 귀족들은 다 도망갔지만 농민 한사람 한사람의 신바람이 그들의 결속을 도왔다.”

문제는 전후 고도성장을 이룬 지금, 가미카제가 목표를 잃고 사라지고 있지만 한국의 신바람은 ‘지금 불어 오르고 있다’는 것. 이런 시각이 ‘대충대충’ ‘빨리빨리’ 등의 한국병을 지적하면서도 기존의 ‘외국인이 본 한국병 진단’류의 책들과 다른 점이다.

한국이 기회의 나라라는 그의 주장을 좀 더 들어보자.

“일본은 100여년간 공업화 대량생산시대에 개성을 죽이는 집단주의가 유효했다. 20세기는 일본에 잘 맞았다. 그러나 21세기 정보화사회는 네트워크의 사회다. 단말기가 필요하다. 한국의 집단주의는 ‘나’라는 단말기에서 출발해 ‘우리(네트워크)’로 번진다.”

그는 대표적인 사례로 한국의 노래방 PC방 휴대폰 문화를 들고 있다. “한국인들은 탈규제의 경향이 강하다. 일단 풀어주면 신바람만 나게해주면 독창성 창의성이 번뜩인다. 21세기에는 그런 한국의 에너지가 폭발할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문제가 난마처럼 얽힌 요즘, 오랜만에 듣는 칭찬이라 기분은 좋지만 한켠으론 그의 칼끝이 ‘그러니 일본인들은 정신차려야 한다’는 일본 각성촉구에 닿아있어 흔쾌하지만은 않다. 이미 아시히 요미우리같은 일간지와 격주간지 니케이비즈니스 등 일본 유수언론이 앞다퉈 그를 인터뷰했다. 한글판은 그의 통역비서인 전영주씨가 옮겼다.

<허문명기자>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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