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건강]건강 염려증도 병 "약물로 70~80% 치료가능"

  • 입력 2001년 11월 13일 18시 28분


최근 미국에는 콧물 기침 등 가벼운 감기 증세만 나타나도 혹시 탄저병에 걸린 것은 아닌가 하고 공포에 휩싸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아직 탄저균이 발견되지 않은 한국에서도 ‘탄저병 공포’에 떠는 사람이 있다.

주위 사람들이 ‘병(病) 제조기’로 부르는 주부 김모씨(36·서울 서초구 반포동)가 그렇다. 김씨는 피로 때문에 뾰두라지만 나도 피부암 걱정을 한다. 피부가 조금만 발개져도, 속이 조금만 쓰려도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병원을 찾아간다. 최근에는 최근 기침이 잦자 탄저병이 걱정돼 잠을 못이뤘다.

김씨처럼 신체에 이상이 없는데도 틀림없이 병에 걸렸다고 생각해 정상적인 생활을 하지 못하는 ‘건강염려증’ 환자는 하루빨리 정신과 치료를 받는 것이 좋다.

주위에서 꾀병이라고 핀잔만 주면 이런 증세는 악화된다. 속쓰림 무기력증 발기부전 등 ‘신체화 장애’로 고생하면서 점차 정상적인 생활과 일이 불가능해진다.

일반적으로 스트레스가 많고 건강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30∼40대 남성이나 집안 문제로 심한 압박감을 갖는 주부에게 이런 증세가 많이 나타난다. 병원을 찾아갔으나 △이상이 없다고 진단해도 병에 대한 공포가 계속 되고 △병명(病名)을 알아내지 못하지만 분명히 몸이 계속 아픈 것 같고 △이런 상황 때문에 화가 나거나 불만족스러운 경우에는 정신과 진료를 받는 것이 좋다.

미국에서는 ‘탄저병 공포’ 속에 건강 염려증 환자가 병원을 찾는 빈도가 부쩍 늘었다는 소식이다. 미국에서는 인구의 4∼7%가 건강 염려증 환자로 추정되고 있으며 국내에도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이 정도의 환자가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 하버드대 의대 부속 브리그햄 앤 우먼스병원의 아더 바르스키 박사는 ‘뉴 잉글랜드 저널 오브 메디신’ 최신호에서 “건강 염려증 환자들에게 병이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어도 대부분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들은 대부분 이렇게 말하는 의사를 ‘돌팔이’로 욕하면서 다른 병원을 찾는다는 것.

미국 뉴욕주 정신연구원의 브라이언 팰론 박사는 “건강 염려증 환자는 의사가 정신과 진료를 권하면 화를 내고 다른 병원을 전전한다”고 말했다.

정신과 전문의들에 따르면 이들 환자는 보통 사람들은 지나치는 작은 몸의 변화도 민감하게 받아 들이고 상당수 환자에게서 실제 통증이 나타난다.

성균관대 의대 강북삼성병원 정신과 오강섭 교수는 “병원을 찾는 환자의 5∼10%는 진단 기준으로는 멀쩡한데 병을 호소하는 경우”라면서 “이들 상당수는 건강 염려증이 신체화 장애로 나타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강 염려증은 치료가 가능하다.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정신과에서는 우선 환자에게 스스로 생각을 바꾸도록 유도한 다음 신체의 변화를 자각하게 만드는 ‘인지 행동 치료’를 한다. 또 프로작 졸로푸트 등 우울증 치료제를 처방하면 증세가 좋아지기도 한다.

바르스키 박사는 “건강 염려증 환자의 3분의 2는 우울증, 사소한 일에도 놀라는 ‘공황(恐惶) 장애’, 한가지 일에 집착하는 ‘강박장애’ 등 정신질환을 동반한다”면서 동반 질환을 치료하면 건강 염려증이 누그러진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팰론 박사는 “환자의 70∼80%는 약물 치료로 상당히 개선되며 조기에 치료할수록 잘 낫는다”고 말했다.

▼뮌히하우젠 증후군/진찰-입원하려 거짓말-자해까지▼

‘뮌히하우젠 증후군(M¨unchhausen Syndrome)’도 외형상 ‘꾀병’으로 보인다는 점에서 건강 염려증과 유사한 병이다.

이 병은 입원 또는 진찰 받을 목적으로 거짓말은 물론, 심하면 자해까지 일삼는다는 점에서 건강 염려증과 성격이 다르며 대개 정도가 심하다.

1951년 미국의 정신과 의사 리처드 아셔가 처음 이 병 환자를 처음 발견했고 미국에서는 80년대 중반부터 관련 논문이 쏟아져 나와 현재 인터넷의 주요 의학 사이트에 올라있는 논문도 1000편이 넘는다. 미국의 민간 보험 회사들은 이렇게 돈이 흘러 나가는 것을 줄이기 위해 관련 연구를 지원하기도 했다.

한국에도 ‘닥터 쇼핑’을 하는 사람 가운데 이 병 환자가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많은 환자가 자신의 병과 관련한 의료 지식을 의사 이상으로 꿰뚫고 있으며 이런 지식을 바탕으로 시술 방법을 구체적으로 요구한다든가, 뱃속에 뭔가 있다며 복강경 수술을 요구하곤 한다.

이 질환은 ‘보호 본능’과 연관 있다. 어릴 적 부모의 온실 밑에서 커서 홀로서기를 배우지 못한 사람이 위기 상황에서 도피 수단으로 의료진에 의존한다는 것.

의학적으로 5, 6세 이전의 아이는 거짓말이 잘못이라는 것을 모른다. 성인이 된 뒤 스스로 문제를 풀지 못하면 뇌의 자기 보호 본능이 어릴 적 상태로 후퇴해 거짓말을 만들어내고 이것을 진실로 믿는 것이다.

뮌히하우젠 증후군 환자는 가족을 달달 볶는다. 자녀를 학대하는 경우도 잦다.

이 경우에도 건강 염려증과 마찬가지로 가족의 역할이 중요하다. 환자는 자신의 본능이 지어낸 거짓말을 진실로 믿으므로 ‘꾀병을 부린다’고 핀잔을 주면 오혀려 막다른 골목에 몰려 증세가 심해진다. 환자를 가능한 설득해 정신과에 데리고 가서 인지 행동 치료, 약물요법 등으로 병을 고쳐야 한다.

<이성주기자>stein33@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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