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공직사회, 벌써 '마비증세'라니

  • 입력 2001년 11월 11일 18시 33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와 집권 여당의 불안정성이 곧바로 공직사회의 동요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시급히 손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중대한 사태다. 이런 현상이 바로잡혀지지 않고 심화된다면 여야(與野) 정쟁(政爭)의 중심에서 벗어나 국정 운영에 전념하기 위해 여당 총재직을 내놓는다는 김 대통령의 ‘결단’도 별 성과를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국정 최고책임자가 아무리 ‘결단’을 한들 손발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이다.

본보 10일자 보도에 나타난 최근의 공직사회 모습은 이미 위험 수위에 올라 있다. 대통령의 여당 총재직 사퇴로 주요 경제 부처와 여당 출신 정치인이 장관으로 있는 부처 등 내각 전반에 큰 폭의 ‘물갈이’가 예상되면서 상당수 공무원들이 사실상 일손을 놓고 정치권 동향에만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일보다 정치(인사청탁)에 더 신경쓰는 사무관이 많고 서기관 부이사관 이사관으로 올라갈수록 이런 경향이 더 강해진다”, “고위 간부들 상당수는 개각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자신의 신상에 변화가 올까봐 거의 일손을 놓고 있다”는 등 현장 공무원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공직사회가 벌써 ‘마비증세’를 보이고 있다는 우려를 짙게 한다.

정권이 임기 말에 가까워질수록 ‘레임덕(권력누수)’ 현상이 나타나고 이에 따라 공직사회 기강도 어느 정도 이완되는 것은 예상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현 정권의 임기는 아직 14개월이 남아 있다. 벌써부터 공직사회가 흔들려서는 결코 안될 일이다.

문제를 풀어 나가려면 무엇이 공직사회의 때 이른 동요를 불러왔는가를 성찰하는 것이 순서다. 암행감찰을 강화한다든지 사정 엄포를 놓는 등의 대증요법으로는 공직사회의 안정을 기할 수 없다. 우선 김 대통령이 여당 총재직 사퇴 이후에도 가시지 않는 사회 일각의 ‘의혹의 눈초리’를 불식시켜 향후 국정에만 전념한다는 확신을 공직사회 전체가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청와대 비서진의 ‘정치개입 금지’ 등 부분적이고 방어적인 수준을 넘어 예측 가능한 국정운영의 시간표를 제시하는 능동적 리더십을 보여야 한다.

민주당도 하루빨리 내분을 수습하고 여당으로서 제 역할을 해야 한다. ‘정치’ 때문에 공무원들이 일손을 놓고 그로 인해 나라가 흔들릴 지경이라는 공직사회 현장의 목소리를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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