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삶의 의미 찾아 "오늘도 나를 쏜다"

  • 입력 2001년 11월 9일 18시 43분


▼'주체·의미·문화:문화의 철학과 사회학' 김덕영 지음/254쪽 9000원/나남출판▼

나이트클럽에서 미친 듯이 춤을 추는 사람들. 이들을 보고 두 가지 방향에서 그 의미를 분석해 볼 수 있다. ‘사회’라는 관점에서 보면 이 행위는 그 사람들이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육체적 정신적 피로를 풀고 다시 사회에서 주어진 과제와 업무를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나 ‘문화’의 관점에서 본다면 이들의 행위는 정신적 육체적 주체를 표현하고 발산시키며 자기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한 것이다.

저자가 취하는 것은 이 중 ‘문화’의 관점이다. 주관적으로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의지와 능력을 소유한 인간은 자신의 사고틀을 가지고 세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주관적 의미 부여에 입각해서 가치와 목표를 설정하며 이에 적합한 수단을 동원해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독일에 학문적 뿌리를 두고 있는 저자는 막스 베버와 게오르그 짐멜을 비롯해 프리드리히 니체, 신칸트학파, 노베르트 엘리야스 등의 문화 이론들을 정리한 후 이를 몸, 주거공간, 돈, 유행, 여성 등의 문화 현실에 적용한다.

90년대 중반, 미국으로 유학 갔던 학생들이 한국에 들어와 하나 둘씩 ‘Made in U.S.A.’란 문자가 선명히 새겨진 ‘이스트팩’ 상표의 가방을 메고 다니자 이스트팩 가방은 대학생을 거쳐 중고생에게까지 크게 유행이 됐다. 가격은 일반 가방의 두 배나 됐지만 가방은 날개돋힌 듯 팔렸고 곧 모조품이 범람했다. 그러자 이스트팩 가방 중에서도 특이한 디자인을 찾게 되고, 나중에는 아예 한결 더 비싼 프라다나 엠씨엠 등의 브랜드를 찾기 시작했다. 1997년 말 외환위기가 닥치자 태극기를 단 가방이나 순수 국산 브랜드를 강조하는 제품이 유행하기도 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유행’. 저자에 따르면 이 가방을 멘 젊은이들은 유행을 따름으로써 사회적 평등화에의 동참을 통해 안정감을 얻는 한편, 기성세대를 비롯한 타집단으로부터 자신을 ‘구별’지음으로써 자기 존재를 개체화시킬 수 있었다. 다만, 교육과정에서 질적인 개체성을 키울 기회를 거의 가지지 못한 한국의 젊은이들은 집단적 유행을 추종하기가 쉽다.

주거 공간에 대한 분석도 흥미롭다. 장유유서(長幼有序)와 남녀의 구별, 가족주의적 폐쇄성 등을 토대로 했던 조선시대의 주거 공간이 산업사회로 들어오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된다.

아파트라는 새로운 주거 공간에서는 자연친화적인 삶과 가부장적 질서에 따른 주거공간의 분할과 배열은 사라졌고, 개인적 사생활을 존중하는 서구식 아파트와는 달리 획일적인 내부구조와 인테리어 때문에 개인적인 기호에 대한 배려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집이 재산 증식의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주체적 삶과 인격적 문화를 가꿀 공간으로서의 주거공간의 의미는 약화됐다고 분석한다.

한 대학원의 세미나를 토대로 했다는 이 책은 당시 세미나에 참가한 학생들의 현장 조사 발표를 활용해 생생한 우리 문화 분석의 실제를 보여준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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