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앞날이 걱정스러운 한국'

  • 입력 2001년 11월 8일 18시 56분


우리는 간혹 잘못된 관행에 길들여진 나머지 악습을 당연시하고 지내는 경우가 있다. 정치 경제 사회 전반에 걸쳐 만연된 이런 관행들이 때로는 외국인들의 눈에 나라의 존망까지 걸린 심각한 문제로 비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국내에서 활동하는 외국 경제인들이 잇따라 지적하고 있는 정치권과 공무원 그리고 언론에 대한 비판은 당사자들이 새겨들어야 할 쓴소리라고 하겠다.

국내 정치의 비효율성은 이미 새삼스럽지 않지만 “여야 의원들의 중요치 않은 반복적 질문에 답변하기 위해 하루종일 국회에서 대기해야 했다”는 윌프레드 호리에 전 제일은행장의 지적은 우리나라가 기업을 하기 얼마나 어려운 곳인지를 상징적으로 말해준다. 분초를 다투는 국제경쟁의 시대에 국회에서 허구한 날을 지새우는 많은 공직자들과 그들을 찾아다녀야 하는 경제인들은 감히 불평을 입에 담지도 못한 채 그런 일상을 숙명처럼 살고 있다.

공무원들의 세도 부리기와 탁상공론 역시 외국인들의 눈에는 불가사의한 행태들이다. 제프리 존스 주한 미국상의회장이 말하는 “업계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공무원들은 세상이 한참 바뀌었는데도 옛날 잣대로 기업을 규제하는 데 혈안이 되어 있다. 그래서 “한국기업들은 규제 때문에 숨이 막힐 정도”가 됐는데도 정부는 규제개혁이 큰 성과를 거뒀다는 자화자찬에만 몰입해 있다.

기업 관련 법과 규제가 너무 모호한 부분이 많아서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다는 지적에서 우리는 정부가 원할 때 원하는 대상을 자의적으로 압박할 수 있는 도구를 확보하기 위해 얼마나 큰 경제적 손실을 국민에게 안겨주고 있는지를 볼 수 있다. ‘없어도 될 법 때문에 외국투자가들이 기피하고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해 외환위기를 극복했다는 이 정권의 자랑을 무색케 하는 증언이다.

외국 자본, 외국 경영자에게 배타적이고 국수주의적 비판을 퍼붓는 일부 언론의 감정적인 보도자세도 바뀌어야 한다. 그것을 애국으로 착각하지만 외국투자가들에게는 세계화 개방화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소아병적 시각으로 여겨질 뿐이다.

외국인의 지적이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선진형 경제시스템을 기준으로 한 그들의 비판은 귀담아들어야 한다. 이 시점에서 가장 강조되는 것은 정치인과 공무원들이 기득권에 집착하지 말고 통 큰 발상으로 투자환경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외국인들이 ‘정치인과 공무원 때문에 한국의 앞날을 걱정’한다니 국민 볼 낯이 있겠는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