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개혁, 진보세력 독점물 아니다'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9분


시민단체들이 운동의 방향과 방식에 대해 많은 지적을 받고 있다. 지나치게 권력 기관화 했다거나, 몸집 불리기에만 앞장선다거나, 정치적으로 한쪽에 치우쳤다거나, 그러다 보니 순수성을 잃고 ‘시민없는 시민운동’으로 변질돼 버렸다든가 하는 것들이다.

변호사로서 시민운동의 최일선에서 활동해온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이석연(李石淵) 사무총장은 이 같은 문제점들을 지적하면서 시민운동이 거듭나야 한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그가 이번에는 개혁과 시민운동이 진보세력의 독점물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해 눈길을 끌었다.

그는 경실련 사무총장직 퇴임사를 통해 “진보 내지 혁신적 세력만이 개혁세력으로서 마치 시민운동의 본류인 것처럼 인식되고,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온건한 보수세력이 반개혁으로 치부되는 상황이 더 이상 정당화돼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현정부 출범 후 목소리를 높여온 시민단체들 중 상당수는 자신들만이 개혁을 외칠 자격이 있다는 독선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이들은 권력측에 경사된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들과 다른 의견에 대해서는 보수적이며 반개혁적이라고 매도해왔다.

언론사 세무조사는 대표적인 사례다. 일부 시민단체는 여러 해석이 가능한 세무조사를 ‘언론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면서 ‘언론 탄압’이라고 주장하는 다른 목소리는 철저하게 외면했다. 지난해 국회의원선거 때는 낙천 낙선운동을 한다며 선거법 위반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재야투쟁식 또는 운동권 방식은 더 이상 발붙일 곳이 없다. 시민운동의 본래 목표는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이를 통해 시민 개개인의 존엄과 가치를 고양시키는 것이다. 그러자면 운동의 방향과 방식도 한쪽으로 치우치는 듯한 모습이 돼서는 안된다. 무엇보다 비당파적이어야 하고 그럴 때 시민운동의 순수성과 보편성도 확보된다.

통일을 추구하면서도 자유민주주의를 우위에 두고, 경제정의를 주장하면서도 자유시장경제질서라는 헌법의 기본이념을 소중히 여기고,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한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그 개혁이 헌법과 법률의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이 총장의 지적은 시민운동의 새로운 방향과 관련해 새겨들을 만하다.

이제 시민운동은 이념적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온건하고 합리적인 시민들을 대변할 수 있는 방향으로 새롭게 전개돼야 한다. 시민단체는 이 같은 변화의 흐름을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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