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박성준/공적자금 투입 만능 아니다

  • 입력 2001년 11월 2일 18시 24분


미국에서는 1980년대 후반부터 90년대에 걸친 무역과 재정의 쌍둥이 적자 속에서 ‘미국은 없다’는 회의론이 강력히 대두됐다. 이 때 제조업 관련 종사자들은 무역 쿼터나 관세를 통한 미국 산업의 보호를 강력히 주장했다.

이런 정책이 설득력을 얻은 이유는 그 부담을 국민 개개인이 나눠 지면 아주 작다는 것이었다. 가령 경쟁력을 잃은 철강산업의 일자리를 2만개 유지하는 데 약 20억달러가 든다면 국민 1인당 부담은 1만원에 불과하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런 해결방식은 국민 부담만 가중시켰다. 결국 90년대 전반의 구조조정을 통해 자생력 없는 산업은 도태됐고 이를 대체하는 정보기술(IT) 및 서비스 산업의 개발로 미국은 다시 일어나게 된다.

98년 1월 30일 한국 정부는 경제위기로 부실채권을 감당할 수 없게 된 제일은행과 서울은행에 3조원의 공적자금을 투입했다. 두 은행이 살아야 일자리를 지킬 수 있는 기업의 근로자를 보호하는 데 국민 1인당 7만원이면 된다는 발상이었다. 그러나 3년이 지난 지금 은행과 기업에 투입된 공적자금은 140조원, 가구당 1200만원에 이르게 됐다. 그럼에도 정부는 올해에도 약 40조원을 추가 투입할 계획이다. 이제 우리는 공적자금을 통한 일련의 구조조정 과정과 그 문제점을 한번 되짚어 볼 만하다.

먼저 공적자금 투입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낮다. 컨설팅사들의 분석에 따르면 국내 상위 기업 239개 중 60%는 자본 조달 비용에도 못 미치는 현금 흐름을 보이고 있고 타 기관의 조사에 따르면 상장 기업 189개 중 50% 이상이 한계기업이다. 앞으로도 지속적인 경기 하강과 수출 침체로 기업들의 부실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우리는 한계기업 보호에 대한 구조조정의 원칙을 재정비할 시점에 와 있다. 이 과정에서 경쟁력 없는 기업은 자금이 투입돼도 결국 도태될 뿐이라는 냉엄한 현실 인식과 우리 경제의 새로운 성장 엔진을 어디서 찾아낼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전제돼야 할 것이다.

그 다음은 공적자금의 효과에 대한 의문이다. 먼저 대규모 공적자금을 받은 많은 기관의 내부 모습이 실질적으로는 과거와 별반 차이가 없다는 지적이 많다. 물론 공적자금의 투입이나 금융기관의 자금 지원에는 기업 개선에 관한 협약이 존재한다. 그러나 협약의 실행이 잘 이뤄지거나 조항이 지속적으로 수정된 예는 찾아보기 어렵다. 따라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조건에 쌍방이 이를 철저히 이행하기 위한 장치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구조조정에서 발견되는 중요한 문제점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나타난 ‘아마추어리즘’이라고 생각된다. 최근 각종 해외 매각 협상에 참여한 관계자가 두서 없이 정보를 공개해 협상에 지장을 가져온 사례도 봤고, 구조조정을 위해 만든 제도가 각종 불법 재테크의 온상이 되기도 했다. 과거 3년 이상 동안 구조조정의 시행착오를 겪었으면 이제는 모든 참여자들이 과거의 잘못을 인정하고 이로부터 배우고 전문가의 중지를 모아 남은 과제들을 풀어 가는 겸손하고도 성숙한 ‘프로’의 모습을 보여줄 때가 됐다고 여겨진다.

박성준(보스턴컨설팅그룹 서울사무소 이사)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