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퇴물' 김응룡감독(?)

  • 입력 2001년 11월 2일 15시 57분


2001 시즌을 마무리하는 한국시리즈가 두산의 승리로 끝이 났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전개된-과연 누가 경기당 17점을 주고받는 한국시리즈를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시리즈였지만, 여느 보통(?)의 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승자와 패자의 명암은 엇갈렸다. 그 중에서도 김응룡 감독과 김인식 감독의 희비는 극명하게 엇갈린다. 모든 스포츠 관련 매체는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김인식 감독을 추켜세우느라 여념이 없는 반면, 김응룡 감독에게는 ‘카리스마가 예전 같지 않다’거나 ‘이제 21세기에 김응룡식 야구는 더 이상 먹히지 않는다’며 ‘퇴물’ 취급을 한다.

그간 김응룡 감독에 대한 평가는 사실 지나친 것이었다. 모든 감독이 항상 최고의 선수들과 함께 플레이 할 수 있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한국시리즈 전승’이라는 ‘신화’ 역시 감독 김응룡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어렵게 했다. 때문에 ‘감독 김응룡’에 대한 평가에 있어 거품이 빠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2001 한국시리즈에서의 실패가 감독 김응룡에 대한 올바른 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고, 프로야구에서 감독의 비중(역할)과 한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를 향한 대개의 비난은 그가 페넌트레이스에서 보여준 감독으로서의 능력을 간과하는 것이다.

잠깐 1년 전 이맘때를 기억해보자. 지난해 라이온즈는 리그 3위(승률 0.539)의 성적으로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플레이오프에서 라이온즈는 현대 유니콘스에게 시리즈 4경기동안 겨우 4점을 얻는 부진 끝에 전패를 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삼성 프런트는 1년만에 다시 감독을 해고하고는 ‘우승 청부사’ 김응룡 감독을 영입하기 위해 기십억을 쏟아 부었다. 그리고 1년 뒤, 라이온즈는 승률 0.609를 기록하며 2위 유니콘스를 7경기 차이로 따돌려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감독이 잘해서가 아니라, ‘투수가 좋았기 때문’에 우승할 수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지만, 발비노 갈베스를 제외한 주축 투수들 가운데 2000 시즌에 삼성에서 뛰지 않은 선수가 있었던가? 임창용의 선발 전환은 성공적이었으며, 영건 2인방 배영수, 김진웅은 이전에 비해 진일보한 기량을 보여줬다. 그리고 갈베스 역시 시즌 중반에 영입한 선수였다.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한국시리즈에 직행한 삼성이, 준플레이오프와 플레이오프를 거쳐 한국시리즈에 진출한 두산에게 패한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이유야 어쨌든 유리한 여건을 살리지 못하고 우승에 실패한 책임을 감독에게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보자. 아무리 강한 팀이라도 10번 싸우면 3-4번 질 수밖에 없는 게 야구다. 게다가 상대는 준플레이오프, 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왔다고는 하지만 분명 리그 3위팀이며, 주어진 기회는 결코 충분하다고 할 수 없는 7번이다. 이를 고려하면 객관적 전력의 우위가 반드시 시리즈 우승으로 귀결된다고 말하긴 어려울 것이다. 차라리 그간 김응룡 감독이 9번의 한국시리즈에서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이상하다면 이상할 일이지, 올해 한국시리즈를 패한 것이 이상한 일은 아닌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밝혀졌듯, 시리즈 1, 4차전에 등판한 갈베스의 어깨는 투구보다 수술이 필요한 상태였다.

물론 한국시리즈에서 김응룡 감독이 보여준 투수 기용을 두고 논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선발 투수들의 조기 강판과 배영수의 3차전 선발 등판을 두고 그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대로 에이스 갈베스는 어깨 부상 중이었다. 이를 사전에 김응룡 감독이 알고 있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1, 4차전에 선발 등판시킨 걸로 봐서는 모르고 있었던 것 같다. 4차전에서도 드러난 것처럼 1차전에서 갈베스를 더 끌고 갔다 해도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2차전 선발 임창용의 컨디션도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았다. 4.1이닝 동안 2루타 3개 포함, 안타 6개, 볼넷 2개를 허용한 투수라면 충분히 교체를 고려할 수 있다. 정규시즌이 아닌 한 경기, 한 경기가 아쉬운 한국시리즈임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3차전 선발은 노장진이 어땠을까 싶지만, 김응룡 감독이 가능한 최선의 선택을 했으리라 믿는다. 배영수가 2차전에서 단 2명의 타자만을 상대했기 때문에 3차전 선발로 지장 없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그리고 실질적인 승부처라 할 수 있었던 3, 4차전에서 삼성 투수들은 상대팀에 무려 29점을 헌납했다. 이런 상황이라면 사실 감독의 투수 기용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한국시리즈 결과를 떠나 삼성 김 감독은 정규리그에서 1위를 한 만큼 자기 역할을 충분히 했다고 본다.” 한국시리즈를 우승으로 이끈 두산 김인식 감독의 말이다. 나는 이 말에 진실이 담겨 있다고 본다. 삼성 라이온즈를 정규시즌 우승으로 이끈 김응룡 감독의 공로는 충분히 인정해줘야 한다. 누가 진정한 승자인가를 떠나 페넌트레이스 우승이 한국시리즈를 위한 관문 정도로 밖에 여겨지지 않는 것은 잘못이다. 김응룡 감독이 결정적으로 한국시리즈에서 패했다고는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로 김응룡 감독은 최선을 다했다. 다른 누가 라이온즈의 사령탑을 맡았다 하더라도 시리즈 결과가 달라졌을 것이라 생각지 않는다. 올해 김응룡 감독은 할만큼 했다. 그에게 박수를 보낸다.

<추기> 물론 믿지 않지만, 만약 ‘저주’라는 것이 있다면 라이온즈가 저주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한 가지 밖에 없다. 자주 한국시리즈에 진출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김응룡 감독은 이를 가능하게 해줄 능력을 갖고 있으며, 때문에 삼성 프런트의 김응룡 감독 유임 결정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프런트에서 서둘러 “김응룡 감독은 계약기간 동안 무조건 삼성 감독”이라고 못박아 김응룡 감독 체제를 둘러싼 잡음을 차단한 것은 잘한 일이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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