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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1년 10월 22일 18시 5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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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경찰이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들이댄 것은 정당을 보호하고 자유로운 활동을 보장해야 한다는 민주주의의 근본을 외면한 행동이다. 정당의 의미는 더 이상 거론할 필요조차 없다. 그 때문에 야당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은 우리의 험난한 정치사에도 불구하고 그 전례가 드물다. 95년 9월 당시 야당이던 국민회의 임채정 의원 사무실, 그리고 98년 자민련의 이원범 의원 사무실에 대한 압수 수색이 있었다. 그러나 두 경우는 개인비리 등과 연관됐던 것으로 이번과 같은 성격의 압수 수색은 아니었다.
한나라당측이 폭로한 문제의 경찰 정보보고가 그처럼 압수수색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적지 않다. 한나라당측은 그 내용이 공무상의 비밀에 속하는 것도 아니고 문서 번호나 보존연한도 없는 임의의 문건이기 때문에 법률적용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반면 민주당측은 그 보고서가 야당이 의도적으로 만든 ‘주문생산된 보고서’라고 반박하고 있다. 말하자면 보고서 자체도 정치적인 공방만 치열할 뿐, 아직은 법적인 판단을 하기가 이른 상황이다.
또 문건 내용도 거짓이 아닌, 사실과 부합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민주당의 김홍일(金弘一) 의원이 제주도에서 이용호씨의 로비창구인 여운환(呂運桓)씨를 만났다는 것은 이미 김 의원 스스로가 밝힌 사실이다.
경찰이 강제로 한나라당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가 서둘러 압수 수색을 실시한 점도 의혹을 살 만하다. 민주당측은 “수사상 진상규명을 위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정당하게 법을 집행한 것”이라고 하나 한나라당측은 “문제의 문건은 경찰이 갖고 있는데도 한밤중에 야당 사무실을 급습하듯 압수 수색을 했다”고 말한다. 이용호게이트와 관련해 김 의원의 이름이 거명되자마자 바로 경찰이 나선 것이라는 주장이 그래서 나온다.
이번 사건은 경찰이 단독으로 결정한 일은 아닐 것이다. 그 동기가 의심스럽기 때문에 야당을 탄압하기 위한 의도적인 행동으로 비쳐진다. 그러나 아무리 상황이 어렵더라도 무리수를 두면 안된다. 모든 진상을 솔직히 밝히는 것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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