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영균/비리폭로의 경제학

  • 입력 2001년 10월 21일 18시 48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레임덕이 시작될 즈음이면 공직사회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이 있다. 요즘 야당에는 고급정보를 가져오는 공무원들이 줄을 서고 있다고 한다. 심하게 말하면 ‘문서가 마르기도 전에’ 서류가 통째로 넘어온다는 얘기도 있다. 그 내용은 주로 현 정부에서 벌어진 각종 비리와 의혹사건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정보가 너무 많아 어느 건을 먼저 터뜨려야 할지 고심하고 있을 정도라고 한다. 그래서 증권가에선 다음에는 이런 사건이 폭로될 것이라는 얘기까지 돌고 있다. 증권가에는이런 확인되지 않는 소문으로 시장이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않고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믿을만하게 들리는 것은 각종 비리 의혹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벌어진 정모씨 진모씨의 신용금고 불법대출사건에 이어 올해는 이모씨의 주가조작과 부동산특혜사건 등이 잇달아 터지고 있다.

이렇다 보니 관련이 있는 공직자들은 사건이 터질 때마다 좌불안석이다. ‘정보가 빠져나갈 때가 여기밖에 없는데’라는 의심을 받는 것이다. 심지어 ‘사람을 만날 때는 사우나탕에서’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린다. 유명한 음식점이나 술집에는 감시의 눈길이 있다는 것이다. 검사의 발언이 녹취록으로 나오는 세상이니 그럴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서 야당에 정보를 가져가는 공무원들의 잘잘못을 따질 생각은 없다. 반드시 폭로되어야할 사건이 있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정기관의 감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심하다는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고 시원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이도 있다.

하지만 그 도가 지나칠 때 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심각하다. 언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누가 제대로 투자할 수 있을 것인가. 증시가 계속 게걸음질을 하고 투자와 소비가 움츠러드는 게 오사마 빈 라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최근에 급상승한 기업들엔 거의 모두 이런 저런 루머가 따라다닌다. 게다가 기업주의 출신지역이 어디라는 설명이 항상 따라다닌다. 그렇다보니 금융시장은 사실상 마비된 거나 다름없다.

지금 시장에선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사실상 정부밖에 없다. 정부나 정부기관인 산업은행 신용보증기금 기술신용보증기금 등이 보증하는 기업에만 대출이 되고 채권이 팔리는 것이다. 바로 어디서 폭탄이 터질지 모르기 때문이다.

또 정부나 정부기관이 사기업의 보증을 서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이런 보증이 제대로 이루어진다는 보장도 없다. 보증선 기업이 망하면 국민세금만 축나게 돼있다. 신용의 회복 없이 경제의 회복은 더딜 수밖에 없다.

올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3인의 이론은 소위 정보경제학 분야다. 한쪽만 정보를 갖고 있는 불완전한 시장에 대한 연구가 인정을 받은 것이다. 지금 우리 금융시장과 경제는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에 빠져 있다. 이런 시장에서는 거래가 정상적으로 이루어지고 제 가격을 받기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연구결과다. 재정을 확대하고 주식사기운동을 해도 경기가 회복되지 않고 주가가 오르지 않는 원인도 여기에 있다. 신속하고 믿을만한 수사를 통해 소문과 폭로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기대한다.

박영균<금융부장>parky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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