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하였는가'

  • 입력 2001년 10월 19일 19시 24분


▼'히틀러는 왜 세계정복에 실패하였는가' 베빈 알렉산더 지음/341쪽 1만2000원/홍익출판사▼

미국과 아프가니스탄 사이에 포성이 한창이다. 역사상 수많은 전쟁들 중에서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다. 잘 알려진 대로 이 전쟁은 히틀러의 독일군이 초반에 파죽의 승리를 거두었으나 결국 연합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그렇다면 왜 히틀러는 초반의 승리를 극대화하지 못하고 세계정복에 실패하였는가? 이 책은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제2차 대전 전기간 중 특히 마지막 1000일에 초점을 두어 설명한다.

한국 전쟁에서도 활동했던 저명한 군사전략가인 저자는 “강한 자를 피하고, 먼저 약한 자를 공격하라”는 중국의 병법가 손자(孫子)의 충고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그는 “독일군이 이 원칙을 지켰을 때에는 연승하였지만, 이를 무시하면서 긴 패배의 길로 빠져들게 되었다”고 단언한다.

구체적으로는 전쟁 초반에 덩케르크에 대한 독일 기갑부대의 진격을 3일 동안이나 정지시킨 결정, 유능한 참모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소련 침공을 감행한 사실, 그리고 스탈린그라드 공격과 노르망디 상륙작전 대응 등 중요 분기점마다 히틀러가 저지른 군사 작전상의 실수들을 들고 있다. 저자는 특히, 1942년 8월에서 1943년 1월말까지 소련에서 벌어진 스탈린그라드 전투는 히틀러가 스스로 자멸을 초래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꼽았다. 당시 히틀러는 볼가강 연안의 스탈린그라드와 코카서스의 유전지대 두 곳을 점령하라고 독일군에게 명령함으로써 전투의 기본인 ‘집중의 원칙’을 무시하였다.

또 결정적인 실수는 볼가강으로 진격해 어렵사리 소련군의 교통을 방해한다는 원래 목적을 달성한 독일군 정예 6군에게 스탈린그라드 점령을 명한 것이었다. 최근 상영된 영화 ‘에너미 앳 더 게이트’에서 잘 그려졌듯, 치열한 시가전에서 히틀러는 최정예 독일 6군 병력을 모두 상실하면서 제2차 대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당시에 히틀러의 오만과 아집은 극에 달해 육군 참모총장 할더가 공격계획을 적극적으로 반대하자 그를 즉시 해임시켰다. 소련군에 포위된 6군에게 후퇴를 허락하지 않았음은 물론 지원부대조차 보내지 않음으로써 자멸을 초래했던 것이다.

결국 히틀러가 세계정복을 코앞에서 놓친 근본 요인은 유능한 독일 장군들(구데리안, 롬멜, 만슈타인 등)이 중요한 조언을 무시하고 본능적 육감에 근거한 자신의 판단을 고집하였던 오만과 독선이다.

이 책은 한 독재자의 만용이 불러오는 엄청난 결과는 세계지도를 바꿔놓을 만큼 심대하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전하는 한 편의 전쟁영화다. 나아가 “멀리 그리고 넓고 깊게 생각하지 못하는 지도자는 반드시 자신의 묘혈을 판다”는 역사적 교훈을 웅변적으로 보여준다. 함규진 옮김, 원제 ‘How Hitler Could Have Won World War Ⅱ’(2000).

이내주(육군사관학교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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