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경민/美, 평화의 길로 발 돌려라

  • 입력 2001년 10월 8일 19시 40분


▼테러응징 아프간 공습▼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대규모 공습이 마침내 개시됐다. 건국 이래 본토에서 한 번도 경험해보지 않은 최악의 테러를 당한 미국이 테러 발생 26일 만에 전격적인 공습에 나선 것이다. 1991년 걸프전 이후 현대전의 양상이 해군력과 공군력을 활용해 기선을 제압하는 군사전략으로 바뀐 만큼 미국은 대대적인 공습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방공망과 주요 군사시설을 파괴했다.

미국 국민의 90% 이상이 ‘복수의 칼’을 빼들라는 극한적 분노로 들끓고 있기 때문에 소나기가 퍼붓는 것 같은 대대적인 공습은 미국 국민의 가슴을 어느 정도 시원하게 해줄지는 몰라도 앞날은 그리 순탄치만은 않다. 미국이 장고(長考) 끝에 공습을 시작한 배경에는 군사작전을 시행하려면 탄약 등의 병참 지원이 확보돼야 하고 전투기와 폭격기의 작전반경이 한정돼 있다 보니 아프가니스탄 주변국들의 군사기지를 사용하는 협상을 벌여야 했기에 그 만큼의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회원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의 지원 확보와 건전한 이슬람 세력들의 눈치도 살펴야 했기 때문이다. 또 한편으로는 과연 대대적인 공습이 테러의 배후 조종 인물로 지목되는 오사마 빈 라덴을 제거할 수 있을까 하는 전략적 유효성도 큰 걸림돌로 작용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이슬람 세력의 결속을 초래한다면 이 또한 테러 대참사 못지 않게 장차 미국의 안전과 번영을 제약하는 아킬레스건(腱)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국의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 전략은 크게 두 가지로 대별할 수 있다. 하나는 폭격기와 전투기 그리고 미사일을 동원해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기간시설을 파괴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오사마 빈 라덴이 은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미국의 특수부대가 아프가니스탄 내의 반 탈레반 세력과 함께 추적하는 것이다. 험준한 산악지형 때문에 국토가 요새화돼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지형적 조건은 미국의 공격 전략이 얼마나 성공적으로 실행될 수 있을지 월남전에서 미국이 경험했던 고뇌를 연상시킨다.

미국 ABC방송의 ‘나이트라인’을 진행하는 앵커맨 테드 카펠은 월남전 종식 10주년 기념방송을 진행하기 위해 베트남의 사이공으로 날아가 전 미국인이 TV를 통해 지켜보는 가운데 시사토크쇼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때 패널리스트로 나온 베트남의 국방장관은 “우리는 미국과 전쟁하면 또 이길 수 있다”고 장담했다. 이 말은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었다는 월남전에서 패배해 그렇지 않아도 ‘람보’를 영화에 등장시켜 영화에서나마 승리하는 후련함을 맛보던 미국인들의 자존심을 다시 한번 짓밟아버렸었다.

베트남의 국방장관은 정글에서 월맹군 대여섯명이 불을 지피면 이를 탐색한 미군 정찰기가 폭격기를 불러와서 월맹군이 모두 도망가고 아무도 없는 정글에 융단폭격을 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래서 미국의 힘이 완전히 빠지기만을 기다렸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전쟁이 길어져 미군 병사들은 앞뒤를 분간할 수 없는 정글 속을 헤매고 다니면서 점점 지쳐 가는데 월남군 병사들은 독립을 쟁취하겠다는 신념으로 정신무장이 돼 있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전쟁의 결과는 뻔할 수밖에 없지 않았겠는가.

▼장기전땐 제2 테러 가능성▼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제2의 월남전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만 가는 이유는 깊은 산 속에 땅굴을 파고 은둔해 있는 탈레반 게릴라들을 완전히 제거하는 데 무리가 따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전쟁은 장기전으로 돌입할 것이고 이는 또다시 제2 의 테러를 불러일으킬 시간을 주게 된다. 며칠 동안 계속될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어느 정도 대리 위안이 충족되면 테러를 근원적으로 제거하기 위해 차가운 이성으로 평화외교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것이다.

보복은 또 다른 보복을 낳는 법, 군사력 사용은 궁극적인 해결방안이 될 수 없다. 미국의 공격이 시작되던 날 뉴욕 공항의 항공기 탑승률이 3분의 1로 떨어지고 있는 현실은 막강한 군사력 사용으로도 미국 국민은 안전할 수 없다는 미국민의 또 다른 심경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김경민(한양대 교수·국제정치학) kmkim0828@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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