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병락교수의 이야기 경제학-19]국민의 4대 의무 '가정'

  • 입력 2001년 10월 7일 18시 51분


얼마 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기업가들과 한국인의 미국 진출에 대해 이야기하다 코리아타운이니 차이나타운이니 하는 말이 나왔다. 유대인타운은 어디냐고 물었더니 한 사람이 무릎을 치면서 거부들이 사는 베벌리힐스가 아니겠느냐고 했다. 최근 서울대를 방문한 어느 노벨 물리학상 수상 교수는 유대인인데 대지가 200만평이 넘는 집에 산다. 집안에 호수도 있다. 왁자지껄한 차이나타운 한 골목을 다 팔아도 이런 집 하나를 못 살지도 모른다.

한국의 제2차 경제개발5개년계획 고문이었던 어마 아델만 캘리포니아대 교수도 유대인이다. 그는 한국을 여러 번 방문했는데, 얼마 전 서울에 와서 한국인과 유대인은 부모들이 ‘목숨을 걸 정도로’ 가정과 자식교육을 중시하는 등 보면 볼수록 그렇게 비슷할 수가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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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이론 창시자이고 ‘국부론’ 저자인 애덤 스미스, 공산주의 이론 창시자이고 ‘자본론’ 저자인 카를 마르크스, 미국 경제대통령이라는 앨런 그린스펀, 경영학의 시조 피터 드러커 교수, 현재 세계 최고의 경제학자라는 폴 새뮤얼슨 MIT대 교수 등은 모두 유대인들이다. 이들이 서양 문명의 3분의 1을 만들었다고 한다.

유대인을 수천년간 유대인으로 남고 뭉치게 한 것은 유대교와 철저한 가정교육이다. 유대교 종교지도자 아브라함 위티는 ‘유대인 전통탐색’이라는 책에서 유대인들은 누구나 가정에 토라(구약성서의 처음 5권의 책)와 성현들의 가르침을 기록한 탈무드 등을 두고 있어서 유대인 가정은 미니 도서관이나 작은 성전(聖殿)에 비유된다고 했다. 새뮤얼슨 교수는 인간의 장래는 태어날 때 방에 책이 있는가 없는가에 따라서도 좌우된다고 했다. 유대인들은 응접실에 술병을 전시하는 일이 없다.

유대인들은 자녀의 가정교육에 대한 부모의 의무를 특히 강조한다. 자녀에게 유대교식의 생활은 물론 효(孝)와 ‘봉사와 나눔과 손님접대의 기쁨’도 철저히 가르친다. 탈무드는 자녀에게 거래와 기술교육을 게을리하는 부모는 자녀를 도둑으로 키우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가르친다. 5세까지의 어린이는 뭐든지 그대로 받아들이는 스펀지에 비유된다. 부모와 가정교육이 자녀에게 얼마나 중요한지는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옛날 중국인들을 끊임없는 전란과 재해, 탐관오리들의 학정 속에서 보호한 것은 가정이다. 이민 온 중국인들이 많은 싱가포르는 가정이 잘 돼야 나라가 잘된다고 믿는다. 인구가 300여만명에 불과한 나라에 1만명 이상의 공무원이 일하는 주택개발부(HDB)가 있다. 가정을 위해 ‘좋은 집’을 지어 제공하는 주택정책을 펴기 위해서다. 대만인들이 사업을 하더라도 가족중심으로 하듯이 동아시아인들은 가정을 중시한다.

가정은 사회의 주춧돌이다. 국민이 아무리 납세와 국토방위의 의무를 잘 하더라도 가정이 무너지면 사회는 무너진다. 도둑과 범죄와 교도소가 늘어나므로 사회는 살벌해진다. 국민이 부담해야 할 사회복지비도 늘어난다.

한국인은 세계에서 족보를 가장 중시한다고 한다. 혈연과 연고를 따지는 것은 문제가 있지만 그만큼 가정을 중시하는 전통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튼튼한 가정과 사회를 만들어갈 저력도 얼마든지 있다.

한국에서는 거의 매일 1000쌍이 결혼하고 333쌍이 이혼한다고 한다. 이혼율은 증가추세에 있다. 쉽게 결혼하고 쉽게 이혼하는 풍조가 확산되는 것이 국민이 가정에 대한 중요성을 점점 인식하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우려된다. 교육이나 납세의무에 버금갈 정도로 가정에 대한 새로운 의무감을 중시해야 하지 않을까.

송병락 서울대 경제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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