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우등생-열등생 같이 앉혀라…학습 시너지 효과

  • 입력 2001년 9월 27일 19시 16분


우등생과 열등생은 누구와 같이 공부하는 것이 효과적일까.

우등생은 같은 우등생보다 열등생과 같이 공부하는 것이 더 높은 수준의 지식을 얻을 수도 있다. ‘자기장 이론’이 알려주는 학습 비법이다.

자기장 이론을 이용해 학생들의 실제 학습 효과를 예측한 논문이 저명한 과학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스’ 최근호에 실렸다. 이 논문은 아르헨티나 이론 및 응용 물리화학 연구소 끌레리아 보르도그나 박사팀이 ‘학습 과정의 이론적 설명’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한마디로 ‘자석처럼 공부해야 학습 효과를 높일 수 있다’는 것이 그녀의 주장이다.

보르도그나 박사는 논문에서 “원자들이 자기장 안에서 질서 정연하게 배열하는 과정이 학생들이 교실에서 배우는 과정과 매우 비슷하다”고 주장했다. 자기장 모델에서 얻은 이론적인 예측이 실제 교육현장에서 일어난 현상과도 상당히 일치한다는 것이다.

보르도그나 박사에 따르면 열등생은 우등생과 같이 공부해야 효과적이다. ‘공부 잘하는 학생 옆자리에 앉으라’는 것이다.

자석을 생각해 보자. 원자들은 자기장의 방향에 따라 질서 있게 줄을 선다. 빨리 줄을 서는 우등생 원자도 있고, 천천히 줄서는 열등생 원자도 있다. 우등생 원자는 자기장을 강화하기 때문에 주위에 있는 열등생 원자는 혼자 있을 때보다 더 빨리 줄을 선다. 옆에서 열심히 공부하는 우등생을 보며 분발하는 열등생과 비슷하다.

우등생들은 어떨까. 보르도그나 박사는 “이론적으로는 열등생과 같이 있을 경우 같은 우등생만 있는 것보다 학습 속도는 다소 느리지만 더 깊고 폭넓게 공부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열등생은 엉뚱한 질문을 많이 해 우등생을 귀찮게 한다. 그러나 우등생은 그런 질문을 통해 스스로 생각하지 못했던 원리를 깨닫는다. 실제로 자기장 속에서 크롬 같은 물질은 제대로 줄을 선 우등생 원자가 거꾸로 선 열등생 원자와 같이 있어야 가장 안정된 상태로 존재한다. 물론 실제로는 반대의 경우도 적지 않다. 어디까지나 이론이다.

논문에 따르면 교사의 지도만 받을 때와 학생들간의 그룹 활동을 병행할 때도 학습 효과가 크게 달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를 들어 학생들이 그룹 활동 없이 무능력한 교사에게서 홀로 배우면 학습 효과는 치명적으로 나빠진다. 그러나 그룹 활동을 하면 학습 효과가 많이 떨어지지 않는다. 그룹활동이 교사의 무능력을 중화시킨 것이다. 그룹활동은 열악환 환경이나 교재도 보완해 준다.

요즘 유행하는 인터넷을 통한 교육은 반대다. 보르도그나 박사는 “자기장 이론에 따르면 인터넷 교육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같이 배울수록 오히려 학습 효과가 떨어졌다”고 밝혔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고, 사람들의 상호작용이 다르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팀의 설명이다.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 이론으로 사회 현상을 설명하려고 시도한다. 진화론은 생물뿐만 아니라 사회 현상 전반에 걸쳐 폭넓게 사용된다. 보르도그나 박사의 논문도 비슷한 사례다. 과학 이론은 현실과 어긋날 때가 많지만 이런 시도는 사회를 이해하는 폭을 넓혀준다.

한국원자력연구소의 정영욱 박사는 “비교적 예측 가능한 원자와 달리 사람은 워낙 복잡 미묘하기 때문에 이론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지만 까다로운 물리 이론으로 교육 현상을 설명하려는 재미있는 시도”라고 밝혔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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