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오세정/정책감사와 거리 먼 국감

  • 입력 2001년 9월 27일 18시 53분


3주일에 걸쳐 실시된 올해의 국정감사가 내일이면 끝난다. 그 동안 미국에서의 테러사태나 이용호 게이트 같은 대형 사건에 묻혀 버린 면도 있지만 사실 올해 국감은 국민의 관심을 끌만한 커다란 이슈를 끌어내지 못한 것 같다.

▼전문성 부족 의원들 준비도 안해▼

물론 단골 메뉴인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에 대한 비리 의혹 공방은 언론에 오르내렸지만 이러한 사안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자질에 관한 문제여서 국정 전반에 걸친 정책의 잘잘못을 담당 공무원들과 함께 따져 본다는 국감의 원래 목적에 부합되는 일은 아니다. 그렇게 보면 이 정도의 성과를 위해서 행정부의 기능을 거의 마비시키면서 3주일을 보내야 하는지 그 효율성에 의문이 간다.

물론 국민의 대표인 국회가 1년에 한 번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하는지 점검하는 것은 의미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을 파헤치지 못하면서 공연히 기관장에게 큰소리나 치는 국감이면 국민의 세금이 아깝다. 국감 준비를 위해 공무원들이 소비하는 시간이나 자료 제출을 위해 산하기관이 들이는 노력을 모두 따져 보면 3주일 동안의 행사를 위해 소요되는 국가적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그마한 실수를 침소봉대하여 전체적인 문제인 양 과장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아 이를 해명하기 위해 치르는 사회적 비용도 만만치 않다. 과연 국감을 통해서 얻는 공공 이익이 이같은 비용에 비하여 얼마나 큰지 따져볼 만하다.

이처럼 국감이 비용에 비해 성과가 신통치 않은 근본 이유는 국회의원들의 전문성이 부족하고 준비도 성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엄청난 양의 자료를 요청한다거나 실무적인 어려움을 설명하면 국회의원을 무시한다며 쓸데없는 권위 의식으로 호통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이러한 일이 생길 때마다 책임 전가에 능숙한 정부 부처 공무원들은 빠져나가고 뒤치다꺼리는 항상 하급 기관의 몫이다.

예를 들어 필자가 근무하는 서울대에 국감 자료로 요청되는 사항들을 보면 실소를 자아내게 하는 일이 많다. 또한 문제점이라고 지적돼 소명 자료 제출을 요구받는 경우도 문제의 핵심보다는 아주 지엽적인 사항이어서 자료 준비 시간마저 아까울 때가 많다. 물론 몇 명 안 되는 보좌관과 일하는 국회의원들에게 국정 전반의 핵심을 파악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지 모른다. 하지만 관련 전문가들의 조언을 받으려는 노력도 게을리하는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국가적으로 더욱 문제인 것은 국회의 국감만 전문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감사원을 비롯한 여러 감사기관들도 사회의 다양화와 복잡성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그러기에 정책의 적합성이나 효율성을 따지는 감사보다 회계나 행정 절차 감사에 치중하고 있다. 예를 들어 최근 정부의 과학기술 연구비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 연구 과제에 대한 여러 기관의 감사가 빈번하게 시행되고 있는데 효율적인 연구 수행을 가로막는 제도적 행정적인 문제점을 밝히고 개선하려는 노력보다 장부 정리가 얼마나 철저한지 세세한 행정 절차를 잘 따랐는지 등을 검사하는데 더 신경을 쓰고 있다.

물론 국민의 세금을 쓰는 사업에서는 회계와 행정 처리가 투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감사를 시행하는데 드는 비용이 그 결과로 얻는 이익보다 크다면 빈대 잡기 위해 집을 태우는 일이 될 수도 있다. 특히 빈번한 감사로 인하여 연구비 집행이 필요 이상으로 경직되어 오히려 연구의 효율을 떨어뜨리는 단계까지 가서는 곤란하다. 효율성을 존중하는 민간기업이나 외국계 기관에서는 연구 수행의 결과물은 철저히 챙기는 반면 연구비의 처리나 행정 절차에 대해서는 연구 책임자에게 전적으로 맡기는 이유를 생각해 볼 만하다.

▼정부 실패 재발 방지 역할못해▼

이제는 국감을 비롯한 감사의 수준을 사회 발전에 맞추어 한 단계 높이는 것이 필요하다. 세세한 회계나 행정 절차만 따지는 단계를 벗어나 정책의 당위성과 사업의 필요성을 근본적으로 살펴보는 정책 감사로 발전해야 할 것이다. 시화호 간척사업과 같은 실패한 정책이 처음부터 시행되지 못하도록 방지하는 것이 사업 시행 중의 사소한 회계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경제적으로도 이익이 아니겠는가.

오세정(서울대 교수·물리학

본보 객원논설위원)sjoh@plaza.sn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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