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경제에세이]전문직 여성으로 인정받고 산다는 것

  • 입력 2001년 9월 26일 19시 23분


올해로 사회생활 9년차, 월드컵이 열리는 2002년에는 직장 생활도 10년째를 맞이한다. 지금 내가 일하는 마케팅리서치는 일반인들에게 다소 낯설게 보일 수 있다. 제품이나 서비스를 생산 판매하는 고객들을 대상으로 일반 소비자를 이해하고 리드하기 위한 중간 역할을 하는 전문적 성격을 가진 직업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여성 비중이 높고 그 역할도 성별에 따른 차등이나 구분보다는 개인의 능력이 더 좌우하는, 시체말로 평등한 능력 위주의 직업이기도 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때로 간단한 시장반응 조사도 있으나 회사의 전략적 방향을 결정하기 위한 중요 사안도 있어 실무 담당자부터 최고경영자까지 다양한 상대를 만난다.

지금 우리 회사에는 여성 팀장 3명과 남성 팀장 2명이 있지만 입사 당시에는 남자 팀장 3명만 있었다. 그 때는 나 역시 여성 연구원 혼자 고객을 만난다는 것은 다소 모양새가 좋지 않게 느꼈던 것 같다. 고객 입장에서는 자사 일에 능력 있는 연구원을 배정하지 않았다고 여기거나 자기 회사 상사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 시절이니까.

그래서 중요한 프리젠테이션 때에는 내가 프로젝트를 직접 수행했더라도 남자 팀장이 발표하거나 반드시 동석하던 적도 있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특정 고객의 경우 내가 혼자 찾아가 발표하면 사장님이 서운해 하셔서 꼭 남자 상사를 동반했던 적도 있고 광고 효과를 측정한 조사에서는 참석한 광고대행사의 에이전트가 “어떻게 여성분들만 함께 오셨나요?”라는 질문을 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여자 연구원이 고객 회사의 최고경영자가 참석하는 프리젠테이션에서 리서치 결과를 발표하고 질의 응답을 받는데 전혀 무리가 없다. 과거와 달리 성별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이나 선호도보다는 전문성과 능력으로 평가하고 인정하려는 사회적 분위기와 태도가 확장되고 있는 듯하다.

아직은 우리나라에서 전문 여성으로 인정 받고 살아간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보다 나은 환경과 역할을 만들고 수용하기 위해 우리 여성선배들이 노력했듯이 현재 우리들도 지금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도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미래의 내 위상이 어떻게 될지 선명하지는 않지만 지금보다는 더 완성되고 성숙한 사람이 되리라는 믿음과 희망으로 오늘도 바쁜 걸음을 재촉한다.

<윤혜진 Taylor Nelson Sofres 연구3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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