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증언:드미트리히 쇼스타코비치 회상록'

  • 입력 2001년 9월 14일 18시 35분


▼‘증언; 드미트리히 쇼스타코비치 회상록’솔로몬 볼코프 지음/491쪽 2만2000원/이론과실천▼

“그들(스탈린 등)이 내 음악을 싫어했다는 건 누구나 다 알지 않는가. 그래서 내가 기분이 나빴냐고? 좀 이상한 질문 같군. 물론 기분이 나쁠 리가 있나!….(중략)그렇지만…. 그들은 무한한 권력을 휘두르는 사람들이다.”(178쪽)

예술과 정치는 그 존재와 자기 표현방식이 사뭇 다르다. 정치는 대중을 지향하기 위해 존재와 상황의 복잡성을 스스로 삭제해야되는 운명을 피할 수 없지만 예술은 새롭고 복잡한 감각의 조직화를 추구하므로 ‘난해와 오해’의 짐을 스스로 지지 않을 수 없다.

바람직한 사회란 예술과 정치가, 그 두 지향이, 당연히 갈등하면서도 그 갈등을 서로의 질적 발전을 위한 자양분으로 만들어가게끔 작동하는 것이다. 현실 사회주의, 특히 구(舊)소련의 패망은 그 작동이 일찌감치 원천적으로 차단되었던 데서도 원인을 찾아볼 수 있다.

쇼스타코비치(1906∼1975년)는 자타가 공인하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음악가 중 한 사람이다. 소비에트 출신의, 그리고 종종 가장 소비에트적이라고 소비에트 체제에 의해 찬양되었던.

그렇게 오해가 생겨난 것은 당연하다. 그는 사실 반체제 예술가였던가, 아니면 그저 그런 관제 예술가였을 뿐인가? 이 책을 읽기 전에는, 그가 내면적으로는(실내악 분야에서는) 반체제적이고 위대한 예술가였으되, 외향적으로는(교향곡-행사음악 분야에서는) 관제예술가였다는 2분법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이 ‘증언’이 담고있는 내용은, 바로 그 이분법을 깬다. 이 책의 가장 위대하면서 가장 시사적인, 즉 고전적인 대목이다. 20세기의 가장 예술 치매적인 ‘정치’ 체제 중 하나였던 현실 사회주의에 대한 그의 태도가 역설과 아이러니, 그리고 블랙 코미디의 그것이었다는 점 또한 오늘의 우리에게 뼈아프고 지독한 감동으로 다가 온다.

‘무례하고 독단적인 폭군’ 지휘자 토스카니니는 정말 싫었고(72쪽), 오스트로프스키 소설 ‘강철은 어떻게 단련되는가’는 형편없는 소설(159쪽)이었으며, 독일과의 불가침조약 시절 영화감독 에이젠쉬타인은 ‘독일인에 대한 공격’을 철저히 삼갔다(234쪽).

“러시아 사람들이 굶주린다고? 말도 안되는 소리. 모스크바에서만큼 식사를 잘한 곳이 없는데?” 라고 말한 휴머니스트 극작가 버나드 쇼, 그리고 소설가 로망 롤망은 거짓말쟁이였다(337쪽)는 쇼스타코비치의 증언은 슬프지만, 동시에 감동적이다.

“내 교향곡은 대부분이 묘비이다”라는 그의 말과 함께. 김병화 옮김, 원제 ‘Testimony : the memoirs of Dmitri Shostakovich’(1979년)

김정환(시인·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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