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근기자의 여의도이야기]내부고발자가 고자질꾼인가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46분


‘소도리 행 댕기지 말라. 들어도 못 들은 척 속심행 다니곡. 속 어신 사람처럼 와리지랑 말고 다니라. 놈덜 싸움 만들곡 이녁 모심만 막아져부러.’

제주도 사투리를 모아둔 한 사이트를 보면 이런 글이 올라 있다. 이 글에는 “제주도 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입이 닳도록 당부한 말들을 올린다”는 설명이 덧붙여 있다.

해석(?)을 하자면 ‘고자질하지 마라. 들어도 못 들은 척 입 다물고 다녀라. 생각 없는 사람처럼 부산떨지 말고 다녀라. 남들 다툼 만들고 자기 마음 상한다’라는 뜻. 역사의 모진 풍파를 많이 겪은 곳이라 고자질에 대해 더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닐까. 제주도뿐만 아니라 고자질을 좋지 않은 행동으로 여기는 건 한국인의 일반적 정서다.

최근 증권가에서도 이 ‘고자질’을 둘러싸고 논란이 많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내부고발자 제도의 긍정적 기능과 부정적 효과에 대해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는 것.

내부고발자 제도란 집단의 구성원이 비위를 저지르는 게 목격됐을 때 동료들이 이를 제보하는 제도. 말썽 소지를 초기에 없애 더 큰 사고를 방지하자는 게 제도의 취지다. 특히 금융기관은 금전 사고가 잦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도입이 강조돼왔다.

좋은 취지인데도 초기부터 논란이 이는 것은 한국적 정서 때문. 한 증권사 준법감시인은 “잘못을 지적하는 건데도 배신행위로만 부각되는 현실 때문에 신고를 꺼리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 제도가 정착한 미국에서도 고발자들은 순탄치 않은 과정을 겪곤 한다. 지난해 개봉된 영화 ‘인사이더’에서 주인공인 담배회사의 부사장은 인체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사용하는 회사의 비리를 폭로하려다 가족의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위험을 감수하면서도 공공 권익 보호에 적극적인 성향 덕택에 미국에선 비위 행위 인지 경로 가운데 내부자 고발이 7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정부는 이 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내년 1월부터 내부고발자보호법을 시행할 예정이다.

하지만 보호장치가 마련된다고 해서 당장 고발이 증가하진 않을 것으로 업계는 예상하고 있다. 구성원들이 고발의 순기능을 우선 인식해야 한다는 것.

한 증권사 관계자는 “회사나 고객뿐만 아니라 비위를 저지른 동료를 위해서도 필요한 제도라는 점을 인식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금동근기자>gold@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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