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기술 따라잡기]진공기술…라면에서 가속기까지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41분


청소부 100년이면 반도체를 만든다.

올해는 진공청소기가 등장한지 100년째 되는 해다. 집안에서 구석구석 먼지를 청소하는 진공청소기가 요즘에는 첨단 반도체를 만드는데 사용되고, 눈에 보이지 않는 나노 구조를 분석하는데 쓰인다. ‘3년만에 풍월을 읊는 서당개’와 견줄만한 눈부신 변신이다.

머리카락 10만분의1 크기의 나노 물질을 만들려면 분자나 원자 구조를 볼 수 있는 원자현미경이 필수다. 원자현미경을 이용할 때 꼭 필요한 것이 바로 ‘진공 기술’이다. 나노 물질을 공기 속에서 관찰했다가는 바로 산소와 만나 산화되기 때문이다.

현대 입자물리학의 꽃인 가속기도 ‘진공’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꿈이었다. 가속기는 전자, 양성자 등 다양한 입자를 거대한 원형 링 안에서 돌린다. 이 링 안은 ‘극진공’상태로 유지된다. 전자가 공기속에 있는 입자와 부딪치면 성질이 변하기 때문이다.

지구 위의 대기압은 760토르(기압단위)다. 진공청소기 안은 약 600토르 정도로 이 기압차를 이용해 먼지를 빨아들인다. 가속기 안은 무려 10억분의 1토르다. 이런 진공을 만들기 위해 먼저 고속 펌프로 공기를 빨아들인 뒤 뜨거운 불꽃으로 가속기 안을 태워버린다.

반도체를 만들려면 실리콘 위에 박막을 입혀야 하는데 이 작업은 반드시 진공 상태에서 해야 한다. 우리가 잘 먹는 라면도 습기를 없애기 위해 진공 안에서 만든다.

비행기 안에도 진공이 있다. 비행기 안에서는 좌변기 옆에 있는 단추를 누르면 ‘쑥’하는 소리와 함께 배설물이 밑으로 빨려간다. 진공이 배설물을 빨아들이는 것이다.

<김상연동아사이언스기자>drea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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