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北청년과의 애절한 순애보 '루마니아의 여인'

  • 입력 2001년 9월 10일 18시 22분


루마니아 여인과 북한 출신 청년과의 반세기에 걸친 애절한 순애보가 발굴되어 소설로 국내에 처음 소개된다.

소설가 권현숙씨가 루마니아 현지에서 취재한 실화를 바탕으로 쓴 장편소설 ‘루마니아의 연인’(민음사)이 그것이다. 한국전쟁 직후 루마니아를 배경으로 한 이 작품은 루마이나인 여교사 제로르제따 마르초유(67)씨와 북한 남성과의 절절한 러브스토리를 담고 있다.

국경을 뛰어넘는 사랑이 가능했던 배경에는 현대사에서 잊혀진 에피소드가 깔려있다. 바로 1952년부터 1950년대 말까지 북한이 전쟁고아들을 대거 루마니아를 비롯한 동구권 공산국가에 위탁 교육시킨 사실이다. 권씨가 알아본 바로는, 루마니아의 경우에는 1952년부터 58년까지 해마다 약 3000명 가량의 북한 고아를 받아들였다.

소설은 당시 루마니아에 세워진 10여곳의 위탁 교육시설 중 러시아 국경지역 북부도시 뜨르고비시데 조선학교가 무대. 주인공인 마리아 에네스쿠라는 이름으로 등장하는 마르초유씨는 1952년 사범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이 학교로 발령을 받았다. 당시 18세였던 그녀는 소설속 김명준이란 이름으로 등장하는 북한인 청년교사(당시 26세)를 이 학교에서 만나게 된다.

동료들의 눈을 피해서 사랑을 키워가던 두 사람은 몇 년간의 노력 끝에 북한 공산당의 승인을 받아내어 57년 4월 당시로서는 흔치 않았던 국제결혼을 하게 된다. 하지만 1959년 북한의 지시로 루마니아의 조선학교가 문을 닫으면서 북한에서 온 학생과 함께 부부는 북한으로 소환된다. 소설은 마리아가 김명준을 따라 북한행 시베리아 열차에 몸을 싣는 것으로 마무리 된다.

40년을 뛰어넘어 현재 이들이 처한 사정을 다룬 에필로그에 적힌 것처럼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오래가지 못했다. 마르초유씨는 당 교육공무원으로 일하게된 남편과 두 해 남짓 평양에 사는 동안 딸 미란(현 41세)을 낳았다. 하지만 미란이 영양실조로 뼈가 구부러지는 병에 걸리자 아이의 치료차 1962년 5월 루마니아 친정으로 잠시 건너왔다. 하지만 그것이 생이별이 시작이 될 줄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 채.

그 뒤로 북한은 이유없이 그녀의 입국을 불허했고, 남편에게 보낸 편지마저 모두 반송됐다. 그는 ‘평생 유일한 남자’였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지난 40년간 백방으로 노력을 다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남편이 북한 어딘가에 살아있을 것으로 굳게 믿고 해후할 날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고 한다.

소설가 권씨가 이 벽안의 여인을 만난 것은 1997년 동구 여행 중 루마니아 수도에 있는 부쿠레쉬티대학 동양어학부에 개설된 한국어강좌를 참관했을 때였다. 마르초유씨는 남편이 원했던 루마니아어-조선어 사전을 만들기 위해 몇 년째 혼자 애쓰고 있었다. “그대를 만나기 전에는 나는 마음 놓고 늙지도 못한다”면서.

권씨는 “국경과 시간을 초월해 평생 순수한 사랑을 품고 살아온 그녀의 모습에 숙연한 감동을 받았다”면서 “이 소설이 그녀가 남편을 찾을 수 있는 마지막 희망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몇 년간 힘들었던 집필 작업을 견뎠다”고 말했다.

<윤정훈기자>diga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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