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와 놀아나다]Na, 배포없는 과거 회귀

  • 입력 2001년 9월 10일 11시 42분


KTF의 이동통신 브랜드 Na가 확성기를 들고 옛날처럼 다시 소리치고 있다. 세상을 다 가지라고.

교복차림의 한 학생이 다급한 표정으로 학교운동장을 달린다. 수업을 제끼로 학교 밖으로 나가려는 불량학생이네그려. 엇. 근데 촌스러운 얼굴이 낯익다. Na 첫광고에서 '난 공짜가 좋아요'라고 아버지한테 개기던 달동네 청년 박용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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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지를 뽀얗게 일으키며 학생의 뒤를 바짝 쫓는 헬기. 헬기에 탄 선생님이 확성기로 근엄하게 소리친다. '수업이 시작됐다. 학교로 돌아가라' 박용진은 어떻게 할까 머뭇거리며 갈등하다가 드디어 결심한다. 주먹을 불끈 쥐면서.

앗. 그러자 이게 무엇인가. 어설픈 애니메이션 페이퍼가 갑자기 등장한다. 종이에 아무렇게나 그려진 학생의 자화상. 포인트는 초롱초롱하게 빛나는 눈. '나는 세상의 주인공입니다'라고 적혀있다.

친구들의 박수소리가 들리는 교실 안. 갈등하던 학생이 교실로 복귀한 것을 축하하는 함성이다. 헬기를 탄 선생님은 '세상을 다 가져라'라고 부르짖는다. 아이들은 좋아라하고.

이번 Na 광고는 예전의 가장 화려하던 시절로 회귀하고 있다. 난 공짜가 좋다며 머리를 비비던 달동네의 청년이 학교에 가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쉽사리 잊혀지지 않는 박용진의 얼굴과 코믹한 분위기 설정으로 다시 한번 절정의 순간을 되찾으려는 의도다. 이건 가장 손쉽고 안전한 방법인 셈이다.

Na의 가장 큰 강점은 세련되진 않지만 어딘지 우리와 비슷한 인물이 주는 친근함이다. 눈높이를 맞춰서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도록 배려한다. 만화그림체의 자화상은 어설프지만 분명히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넉살을 보여준다. TTL이 몽롱하고 신비로운 분위기로 청소년을 끌어들인다면 Na는 구체적으로 명징한 상황으로 어필한다. 임은경과 박용진의 모델 얼굴을 떠올려봐도 그 이미지는 확연하다.

하지만 이번의 Na는 실망스럽다. 바로 전편에서 보여주던 학교를 떠나 고뇌하던 학생과 대졸실업자의 막막함을 공허하고 진지하게 다루던 그 문제의식은 어디로 꼬리를 감춘 걸까.

게다가 타이밍이 나쁘다. 아무렇지 않게 학교를 탈출해 철난간에 걸터앉아 허무한 눈물을 흘리던 학생은 어쩌고 연이어서 다시 학교탈출을 둘러싼 우스꽝스러운 개그를 선보이는건지. 전작에선 돌파구가 없음을 절절히 느끼는 학생의 암울한 모습이고, 후작은 확성기 소리 하나로 얌전히 돌아가는 학생의 모습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건가.

같은 상황의 청소년을 모델로 한 회사의 광고가 이렇게나 극단적인 시각을 드러낸다는건 모순적이다. 아무리 광고가 쉽게 잊혀진다지만 이렇게나 자기모순적인 광고를 순순히 내보내다니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시야가 좁은 것이다. 냉철한 현실인식에서 코믹으로 분위기를 급전환하는 적절한 시간 터울도 아쉽다.

늘 문제의식을 다루라는 말이 아니다. 단지, 제대로 한번 정면으로 현실을 다뤄보자는 의식을 가졌다면 배포있게 놀아줬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이진 AJIVA77@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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