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경제 자문 관계로 네팔에 1개월 이상 가게 됐을 때 에베레스트산 생수에 많은 기대를 했는데 막상 도착해 보니 석회석 때문에 마실 수 없어서 실망한 적이 있다. 이런 실망은 프랑스나 독일 방문자들도 경험한다. 중동에는 물이 석유보다 비싼 나라도 있다. 세계에는 물 부족으로 고생하는 나라도 많으나 한국에는 수자원이 풍부한 편이다. 한국에는 세계최고의 도자기를 만들 수 있는 흙, 석굴암처럼 빛나는 예술품을 만들 수 있는 돌, 시멘트 원료인 석회석 등은 ‘무진장’이라고 할 수 있다.
국토문제 전문가인 유우익 서울대 교수는 한반도는 양이 적은 것이 있어서 그렇지 각종 자원이 골고루 다 있는 ‘자원박물관’이라고 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석유 등 부족한 것만 골라서 나라를 자원빈국으로 비하하는 것이 안타깝다는 것이다. 부모가 자식에게 우리 집은 좁아서 틀렸다는 식으로 패배의식을 길러주는 것이 잘못이듯, 국토를 비하하는 것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각종 자원이 모두 풍부한 나라는 극소수이다. 쉽게 선진국이 되는 것도 아니다. 자원이 풍부한 ‘소련’은 나라 자체가 없어졌다. 선진국 중에는 자원부족 문제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선진국이 된 경우가 많다. 노르웨이는 국토의 3분의 1이 북극권이고, 농경지는 3%밖에 안 된다. 네덜란드는 국토의 4분의 1이 해면(海面)보다 낮다. 네덜란드를 신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3국에 둘러싸인 ‘산 속의 자원빈국’이다. 스위스에는 바다도 없다. 일본도 농경지 비율은 한국보다 낮다.
‘앞으로 서울 사람들은 휴가를 시내에서만 보내고 여행하려면 외국에 가야 한다.’ 이런 상태가 되면 얼마나 답답할까. 국토가 서울만한 싱가포르가 바로 그런 나라다. 홍콩도 아름다운 곳이라고는 하나 땅이 작다. 싱가포르와 홍콩을 합쳐도 제주도보다 작다. 제주도는 서비스산업, 지식산업의 관점에서 보면 자원이 풍부하다.
농경사회 때는 농토, 공업사회 때는 광물이 주요한 자원이지만 지식사회에서는 물 흙 돌 기후 눈 산 강 바람 햇빛 바다, 아름다운 경관, 지정학적 위치 등 자연으로부터 주어진 것은 모두 자원이 된다. 사계절이 분명한 한국의 기후도 물론 자원이다. 일본은 얼마 전 9월에만 태풍을 열 번이나 겪었다. 지진과 해일 문제도 심각하다. 중국문명의 발상지인 양쯔강 유역도 태풍이나 홍수 피해가 막심하다. 이에 비하면 한반도는 전체가 지식산업발전을 촉진할 수 있는 자원덩어리인 셈이다.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자원관이 필요하다.
싱가포르는 동양과 유럽간의 국제 무역로의 중앙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을, 스위스는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사이에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을 살려 성공했다. 지정학적 관점에서 보면 한반도는 이들에 못지않다. 루마니아 출신 작가 비르질 게오르규는 ‘깎아 놓은 보석과 같은 한반도는 아시아 대륙의 열쇠’라고 했다. 많은 외국인들은 한국을 동북아의 중심지라고 한다.
우리는 결코 중국이나 일본 관점에서 한반도를 ‘주변’지역으로 볼 것이 아니다. 항상 한반도를 ‘중심’으로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을 보고 글로벌시대에 이들 나라의 자원도 잘 활용할 계획을 짜면 우리 국토는 지식기반시대의 자원 보고가 될 수 있다.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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