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사회]신화학강의 "이성의 힘으로 극복할수 있을까"

  • 입력 2001년 9월 7일 18시 31분


신화학 강의/ 안진태 지음/ 627쪽 1만8000원 열린책들

인간의 언어와 기록이 정교해지기 시작하면서 신화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이성의 시대가 오는 듯했다. 그러나 끊임없이 새로이 발전하는 과학기술이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순식간에 골동품으로 만들어버리는 속도의 시대가 왔음에도, 20세기말부터 한국 서점가에 불어닥친 신화의 열풍은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좀처럼 수그러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20세기를 ‘합리성의 광기’로 몰아넣었던 ‘이성의 과잉’을 반성하면서 신화는 다시 인간들을 사로잡아 가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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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는 때때로 사실보다 웅변적이다.”

강릉대 독문학과 교수인 저자는 “세계는 늘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 바로 진리”라는 통설에 반론을 제기하며 “실제로는 하나도 변한 것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오래 된 신화를 변함 없이 뒤적이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사랑에 대한 갈구와 물질적 탐욕과 권력에 대한 욕망…. 신화는 이 모든 것을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신화는 물론이고 신화를 형상화한 문명이 시대를 초월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한다.

신과 신화의 개념에서 시작하는 그의 ‘신화학 강의’는 신화의 풍성한 보고인 그리스 신화, 천사의 몰락과 타락의 전설, 민담 속에 담긴 인간과 동물의 신화, 점성술적 신화 등을 거쳐 현대의 ‘신화와 이성 논쟁’에 이른다.

저자는 가장 최근의 신화에 대한 논란으로 아도르노의 저서인 ‘계몽의 변증법’과 하버마스의 저서인 ‘의사소통 행위론’을 검토한다. 이성이 신화적 사고의 지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 아도르노는 ‘노(No)’, 하버마스는 ‘예스(Yes)’다. 아도르노는 이성의 계몽이 신화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데 반해, 하버마스는 합리적 이성이 신화로 복귀하는 것이 불가능함을 분명히 한다는 것이다.

둘 중 누가 옳든, 신화는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이 두 입장의 논쟁에 대한 저자의 해석을 통해, 독자들은 오히려 합리성에 기반하고 있다고 자부하는 현대인들이 아직도 신화의 ‘망령’에서 자유롭지 못함을 볼 수 있다.

신화의 도도한 강물 속으로 독자를 밀어넣는 머치아 엘리아데나 조셉 캠벨, 혹은 이윤기 등의 신화연구자들에 비한다면, 안 교수는 수많은 신화 이론에 대한 종합적 정리와 논리적 분석을 통해 그 강물을 바라볼 수 있는 ‘마른 땅’으로 독자를 안내하려는 듯하다. 어떤 방식의 안내를 택할 것인지는 신화세계로의 여행을 떠나려는 독자가 결정할 일이다.

<김형찬기자>khc@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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