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방황하는 대학 수시합격생들

  • 입력 2001년 9월 6일 18시 28분


‘고교생도 아니고 대학생도 아니고.’ 대학입시 수시모집에 합격해 이미 입학이 결정된 고교 3년생들이 학교와 교육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방황하고 있어 대책마련이 시급하다.

이번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해 등록을 마친 예비대학생은 모두 7111명이나 된다. 그러나 대부분이 합격 이후 줄곧 허송세월하고 있다. 특별한 교육프로그램이 제대로 마련돼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선 고교에서는 이들에게 다른 학생들과 똑같은 수업을 받게 하고 있다. 하지만 이미 합격한 마당에 입시를 위한 수업이 귀에 들어올 리 없다. 이 바람에 정규수업은 팽개친 채 소설책을 보는 등 시간을 짜임새 있게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

다른 수험생의 입장에서 보면 이 같은 모습이 좋게 보일 리 없고 결국 수업분위기를 해치는 쪽으로 작용하고 있다. 합격생이 무슨 공부냐며 ‘왕따’를 당하는 현상까지 빚어지고 있다. 일부 학교에서는 아예 결석을 눈감아 주고 있다.

당초 수시모집제도를 도입한 것은 획일적인 입시제도에서 벗어나 수험생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주고, 대학에는 특정분야에 재능 있는 우수학생을 미리 선발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다. 또 입시공부에 찌든 수험생이 합격 후에 나름대로 부족한 교양과목 등을 공부할 수 있게 하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제도 미비로 우수한 학생들을 오히려 나쁜 방향으로 가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 같은 수시모집의 시기가 정시모집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아 큰 문제가 없었지만 올들어 1학기부터 이를 실시함으로써 문제가 복잡해졌다. 1학기 수시모집에 합격한 경우 거의 6개월을 대학생도, 고교생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입시교육에 매달려야 하는 일선 학교로서는 이미 합격한 학생들까지 돌볼 여력이 없다는 것이다. 교육당국은 해당 대학이나 시도교육청이 나름대로 교양 문학강좌 등을 만들어 이들을 수용하도록 했다지만 제대로 이행되는 곳이 없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나름대로 이들을 위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었지만 합격생 1316명 중 67명만이 참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해당대학에서 나름대로 커리큘럼을 만들어 예비대학을 운영하거나 각 시도교육청이 제대로 된 교육프로그램을 만들어 이를 운영할 수 있도록 교육당국의 철저한 감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어떤 교육정책이든 교육현장에 미칠 영향을 충분히 고려한 후 실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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