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최화경/콜레라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7분


50년대까지만 해도 콜레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멀쩡하던 사람이 갑자기 설사와 구토를 하다가 며칠 만에 덜컥 죽어나가곤 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한 사람이라도 이 병에 걸리면 삽시간에 번져 마을 전체가 재앙을 당하는 바람에 콜레라 환자가 생기면 집 바깥에 새끼줄을 치고 아예 사람들의 왕래를 막았다. 마늘을 먹으면 병에 걸리지 않는다고 하여 그 매운 마늘을 몇 주먹씩 삼켰다가 멀쩡한 속을 버리곤 했던 것도 이때였다. 해방 이듬해에는 무려 1만5000여명이 콜레라에 걸렸고 죽은 사람만도 1만명이 넘었다.

▷콜레라는 조선시대에도 유행했던 것 같다. 조선실록에 보면 ‘현종 13년(1671년)에 호역(콜레라)이 8도를 휩쓸어 죽은 자가 수를 헤아릴 수 없고 참상이 임진년 왜적 침입 때의 피해와 맞먹는다’는 대목이 나온다. 순조와 고종 대에도 콜레라가 창궐해 수십만명이 떼죽음을 했다고 한다. 엊그제 방영된 TV드라마 ‘태조 왕건’을 보면 돌림병이 돌아 장졸들의 사기가 크게 꺾이는 바람에 고려군이 조물성 전투에서 후백제군에 패퇴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설사 구토 등의 증상으로 미루어 그 돌림병의 정체가 콜레라로 짐작이 간다.

▷서양에서도 콜레라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14세기 중반 유럽대륙을 휩쓸며 전체인구의 3분의 1을 앗아간 페스트보다는 덜하지만 1817년부터 약 100년 동안 6차례나 유행해 무수한 사람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 때문에 중세 유럽에서는 콜레라로부터 보호해준다고 하여 귀족들이 루비를 품에 지니고 다니기도 했다.

▷인도 벵골 지역에서 처음 발생했다고 하는 콜레라는 오염된 물이나 음식을 통해 전염되기 때문에 ‘후진국 병’으로 불린다. 상수도 시설이 잘 갖춰져 있고 재래식 화장실도 대부분 수세식으로 바뀐 요즘은 음식물만 위생적으로 다루면 크게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병이다. 그런데 선진국 문턱에 이르렀다는 우리나라에서 요즘 다시 콜레라가 유행하고 있다. 처음 병을 옮긴 사람이 가장 위생에 신경을 써야 할 식당 종업원이라고 하니 더욱 기가 막힌다. 전처럼 떼죽음하는 사태야 없겠지만 보건행정이 거꾸로 돌아가는 것 같아 씁쓸하다.

<최화경논설위원>bbcho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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