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순리’ ‘쇄신’밖에 없다

  • 입력 2001년 9월 4일 18시 37분


국회에서 임동원 통일부장관 해임건의안이 통과된 데서 김대중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의 핵심 인사들은 두 가지를 깊이 깨달아야 할 것이다. 첫째는 남북문제 해결이 아무리 지고지선(至高至善)이며 이 정부의 간판정책이라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한 편에 좋든 궂든 그 절차와 진행에 관해 반대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장벽’이 있음을 현실로 인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른바 햇볕정책이 김대통령 나름의 신념, 거기에 ‘소수 정부’의 업적 의식이 곁들여져 강행되는 과정에 안팎의 박수 갈채도 있었지만 거기에 상응하는 반대와 질타의 목소리도 들끓었다. 이번의 해임안 가결은 바로 국회의사당 안에 후자를 대의(代議)하는 세력이 다수임을 보여주었다. 만일 이 현실을 거부하고 무시한다면 의회주의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될 것이다.

둘째, 김 대통령과 민주당 정권이 명실상부한 레임덕을 인정하고 거기에 적응해 가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실패하면 김 대통령이나 민주당도 어려워지려니와 나라와 경제 사회의 기반에 큰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본격화된 레임덕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순리와 정도(正道)로 민심에 다가서고 야당을 아우르는 정치를 해야 할 것이다.

이 정권은 처음부터 ‘소수 정권’으로 출발해 줄곧 고전했고 지난해 4·13총선의 결과로 여소야대가 되면서 운신의 폭은 더욱 좁아졌다. 그럼에도 다수 야당과의 대화보다는 군소 야당인 자민련과의 공조에 매달리고, 의원 이적을 통한 자민련 교섭단체화에 안간힘을 기울여 왔다. 그러다 이번에 자민련과의 갈등으로 모든 것이 다 깨졌다.

이제 선택 수단은 제한되어 있다. 김 대통령과 정권측은 ‘숫자와 힘’을 송두리째 잊고 정치력과 대화로 임기말을 풀어나가는 길밖에 없다. 청와대와 여당 일각에서는 이번 일을 놓고 ‘국민을 상대로 한 정치’를 한다고 하나 위험한 발상이다. 국민이 지역으로 갈기갈기 나누어진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런 말이 나올 리 없다. 설마 시민단체를 그렇게 지칭하는지 모르나 ‘외곽을 때리는 식의’ 여론몰이 정치로는 정국 반전은커녕 혼란과 내분만 부추길 뿐이다.

국정 쇄신은 다른 이도 아닌 김대통령 자신이 국민을 상대로 한 약속이었다. 당정의 사표를 거머쥔 김 대통령이 진심으로 역사와 국민을 내다보면서 냉철한 자세로 내각, 그리고 민주당과 청와대의 진용을 새 판 짜듯이 해야 할 것이다. 국민이 임기말 김 대통령 진용의 쇄신을 보면서 김 대통령의 의지를 읽고 마음이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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