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가 흐르는 한자]通 牒(통첩)

  • 입력 2001년 9월 2일 18시 42분


通 牒(통첩)

牒-편지 첩 鱗-비늘 린 斷-끊을 단 葉-낙엽 엽 簡-편지 간 譜-문서 보

片(조각 편)과 나무조각장(널빤지 장)은 언뜻 봐도 정반대의 모양을 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곧 木(나무)을 절반으로 자른 오른쪽과 왼쪽 부분이다. 그것은 곧 ‘널빤지’다. 그러나 후에 와서 약간 다르게 사용되었는데 좀 큰 널빤지를 나무조각장, 작은 것을 片이라고 구별했다.

그래서 나무조각장이 침대나 장롱, 문짝과 같은 것을 만들 정도의 조각이라면, 片은 책의 木版(목판)이나 笏(홀·관리가 조정에 들 때 손에 쥐었던 조그만 나무 조각) 정도의 작은 크기라 하겠다. 片은 나중에는 ‘조각‘이라는 뜻도 가지게 되어 片鱗(편린)이니 斷片(단편), 破片(파편), 一葉片舟(일엽편주) 등의 말이 나왔으며 片으로 이루어진 한자는 나무 조각을 뜻하는 것들이 많다. 版(조각 판) 牌(호패 패) 牘(편지 독) 등.

牒도 그렇다. 아주 옛날 종이가 발명되지 않았던 시절, 글씨는 비단이나 나무조각에다 썼다. 하지만 비단은 너무 고가품이라 궁중에서나 사용되었으며 민간에서는 대나무나 나무 조각을 이용했으니 竹簡(죽간)또는 木簡이다. 이와 같은 습속은 후에 종이가 발명되고 나서도 지속되었다. 곧 얇고도 작은 나무 조각에다 간단한 내용을 기록하곤 했는데 그것을 牒이라고 했다. 요즘 말로 ‘쪽지’였던 것이다.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으므로 牒은 편지 글씨판, 공문서 따위의 뜻을 가지고 있다.

牒은 그 쓰임새에 따라 이름도 달리했다. 즉 族譜(족보)를 기록한 것이면 譜牒(보첩)이라 했으며 조선시대 때 出家한 승려에게 발급했던 신분증은 度牒(도첩)이라 하였다. 또 벼슬아치가 조정에서 받은 임명장 따위는 職牒(직첩)이라 하였으며 글로 적은 국가의 공문서를 通牒이라고 했다.

그 공문서를 내리는 것을 下牒, 상부 기관에 올리는 것을 呈牒(정첩), 다른 기관에 넘기는 것을 移牒(이첩)이라고 했다. 그 牒은 지금도 사용되는데 잔치나 기타 모임을 맞아 손님을 청하는 조그만 종이쪽지를 請牒(청첩), 혹은 請牒狀(청첩장)이라고 부른다.

通牒은 근세에 들어와 국가간의 外交文書를 뜻하기도 했다. 그래서 평시에는 일반적인 通牒을 교환하다가도 전시나 비상시국, 아니면 외교 현안이 걸려 있는 중대한 시기라면 通牒의 기능은 더욱 중요해진다.

특히 宣戰布告(선전포고)나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기라도 하면 마지막으로 通牒을 보내게 되는데 이른바 ‘最後의 通牒’이다. ‘끝장났음’을 뜻하는 것이다.

鄭 錫 元(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sw478@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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