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박중현/“基金부실 숨기면 없어지나”

  • 입력 2001년 8월 29일 18시 32분


“내년부터는 각종 기금의 성적을 순위로 매겨 공개하겠습니다.”(2000년 8월 30일) “작년에는 문제점을 들추는 게 목적이었지만 올해는 개선된 상황을 살펴보는 데 주안점을 뒀습니다.”(2001년 8월 27일)

기획예산처가 220조원을 굴리는 57개 연기금을 실사평가한 결과를 내놓으면서 지난해와 올해 각각 밝힌 설명이다.

정부는 기금 운용 40년 만인 작년에 처음으로 연기금 운용실태를 조사해 발표했다. 국민의 혈세로 조성된 각종 기금들이 방만하게 운용된 실태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막대한 자산을 관리하는 인력의 전문성이 떨어지는가 하면 일부 기금들은 수익성 없는 사업에 큰돈을 쏟아붓고 있었다. 작년 연기금의 성적표는 한마디로 ‘부실투성이’였다.

여론의 비판이 쏟아지자 기획예산처는 작년 8월 “올해는 사람도 모자랐고 준비기간이 짧았지만 내년에는 점수를 꼼꼼히 매겨 순위도 발표하겠다”고 공언했던 것이다.

그런데 웬일인가. 이번 평가 보고서는 연기금의 운용성적 순위는 차치하고라도 도대체 어떤 연기금이 잘 했고 어느 연기금이 못했는지 알 수 없도록 돼 있다.

이에 대해 기획예산처 고위관계자는 “올해는 그동안의 개선노력을 평가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둘러댔다.

기금평가단에 참가한 한 민간위원은 “언론보도용과 국회제출용 자료를 따로 낸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털어놨다. 기획예산처가 국민 앞에 공개해야 할 자료를 숨기고 있는 셈이다. 국회에 낼 자료가 언론보도용과 얼마나 다를지는 앞으로 지켜볼 일이다. 기획예산처가 당장 눈앞의 비난을 모면하기 위해 편법을 썼다면 이는 연기금의 부실을 방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결국은 국민부담으로 돌아갈 연기금의 부실을 쉬쉬하고 덮는다면 그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외환 위기 이후 ‘경영 투명성’을 강조하며 대기업을 채찍질해온 정부가 사실상 나라살림의 일부인 공공기금에 대해서는 불투명한 평가보고서를 내도 좋은가. 이런 이중잣대가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증폭시키는 요인의 하나다.

박중현<경제부>sanjuc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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