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국내 벤처 "미생물 게놈에 승부건다"

  • 입력 2001년 8월 22일 18시 30분


작은 것이 아름답다.” 최근 바이오벤처의 새로운 흐름이다. 선진국들이 엄청난 자금을 바탕으로 인간게놈프로젝트와 같은 대형 연구과제를 성공시키고 있는 상황에서 적은 비용을 투입하고도 성과가 금방 나타나는 미생물이 바이오벤처의 새로운 연구분야로 부각되고 있는 것.

국내에서 게놈 염기서열 전체가 해독된 것은 모두 미생물로 현재 총 4종이다. 바이오벤처인 마크로젠이 지난해 알코올 발효균주 자이모모나스 모빌리스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한 이래 헬리코박터 파이로리, 맨하이미아 55E, 코리네박테리움 암모니아게네스의 게놈 염기서열이 모두 바이오벤처에 의해 해독됐다.

최근 과학기술부 산하 작물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은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게놈 해독 과제를 입찰에 붙였다. 벼를 감염시키는 벼알마름병균의 게놈 해독 과제 입찰에는 바이오벤처 7개사가 참여해 경합을 벌였다.

이렇게 바이오벤처들의 미생물 게놈 연구가 활성화되는 것은 미생물이 가지고 있는 산업적 가치 때문이다.

미생물은 게놈의 크기가 100∼4000만 염기쌍 정도로 동식물에 비해 매우 작고, 게놈에서 기능을 가진 유전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고등생물보다 훨씬 높아 게놈 연구가 용이하다. 반면 분석 대상이 되는 미생물의 대부분이 현재 산업계에서 이용되고 있거나 아니면 기존의 화학공정을 대신할 수 있는 균주이기 때문에 게놈 분석을 바탕으로 기능 분석이 이뤄지면 바로 산업에 응용할 수 있다.

최근 바이오벤처인 바이오인포메틱스는 숙신산 생산 균주의 게놈 해독을 바탕으로 컴퓨터 상에 가상세포를 만들 계획을 발표한 바 있다. 이렇게 되면 산업용 원료인 숙신산을 가장 효과적으로 만들 수 있는 대사과정을 컴퓨터로 설계한 다음 유전자 변형을 통해 새로운 형질의 균주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미생물 게놈 해독은 다른 생명공학 연구를 위한 토대가 된다. 노정혜 서울대 교수(생명과학부)는 “미생물은 게놈의 크기가 작기 때문에 게놈 분석뿐 아니라 유전자와 단백질 분석을 통해 생체 기능을 규명하는 프로테오믹스 연구나 유전자의 기능을 밝혀내는 기능 유전체학 연구도 상대적으로 쉽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게다가 동식물에 감염되는 미생물의 게놈을 해독하면 역으로 동식물의 유전자에 대한 정보도 얻을 수 있다.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이 위암 유전자 규명을 위해 헬리코박터균의 게놈 염기서열을 해독한 것이나 작물기능연구사업단과 농업과학기술원이 각각 벼알마름병균과 흰잎마름병균의 게놈을 해독하기 시작한 것도 이 때문이다.

문제는 연구역량이 분산돼 있다는 것. 현재 국내에 있는 자동 염기서열분석기는 약 30여대로 이 가운데 20여대를 바이오벤처가 소유하고 있다. 그 결과 게놈 연구에서 바이오벤처들이 많은 성과를 내고 있지만 유전자와 단백질 기능 분석처럼 인력과 자금이 크게 필요한 연구를 하기에는 무리다.

OECD에 따르면 세계 생명공학 시장 규모는 2000년 현재 540억달러 정도인데, 이 가운데 미생물 관련 제품 시장이 105억달러다. 국내 기업들의 매출 규모는 약 1조원으로 적지 않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강사욱 서울대 미생물연구소장는 “미생물은 아직 전체의 1%도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국내의 풍부한 연구인력을 결집시켜 국내 고유의 균주를 찾아내고 기능을 분석해낸다면 침체된 미생물 관련 산업을 세계와 경쟁할 수 있을 정도로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영완동아사이언스기자>puse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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